[시론/제성호]쓴소리 못 참는 정부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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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에 쓴소리를 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잇달아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대북정책을 비판한 국책연구기관의 박사가 중징계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으며, 대북 송전의 문제점을 지적한 민간 전문가에게 정부가 앞으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최광 국회 예산정책처장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후 자진사퇴 압력을 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면직 처분되기도 했다.

참여정부가 ‘코드 인사’에 이어 ‘코드 발언’과 ‘코드 연구’까지 강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공무원이나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국민의 봉사자이지, 정권의 봉사자가 아니다. 정권이 잘못한다고 판단하면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정책 결정이 다소라도 수정될 수 있고, 대안 찾기가 가능해진다. 자유로운 의견 개진에 대해 인사상의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억압하게 되고 결국 최선의 정책 선택과 국가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의견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국가정책은 한번 결정하면 돌이키기 어렵고, 정책적 오류와 실패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막지 못한 것은 정부가 공식 라인에서 올라오는 낙관적 보고서만 믿었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과 비판적 평가를 묵살할 경우 그 후과(後果)가 어땠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민족의 생존 및 안위와 직결돼 있는 대북정책, 민족이 살아갈 삶의 공간과 존재양식을 변화시키게 될 통일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만 들으려 하고, 자기 배짱과 맞지 않는 말은 하지도 말라는 식의 태도는 곤란하다. 북핵 문제로 ‘안보 위기’가 불어 닥칠지도 모를 지금이야말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국론을 하나로 모을 때가 아닌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를 비롯해 각종 정부 자문위원회의 태반이 코드가 맞는 인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이 비슷한 사람끼리는 좀 더 넓은 사고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 자문위원회 운영은 정부 정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시간과 예산을 낭비하는 비생산적인 것이 될 뿐이다.

학자적 양심에 기초한 것이라면 다른 코드의 전문가 의견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아쉽다.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나름의 논리적 근거와 경험적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 우수한 인력이 적지 않지만, 모두가 최고 전문가라곤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반대 의견은 내치고, 특정 성향의 의견만 편식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공무원들의 참신한 정책 개발 노력, 전문가들의 정부 자문역 및 정책제언 기능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민간 학자들까지도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나팔수가 될 것을 바란다면, 획일적인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로(言路)를 막을 경우 하의상달 내지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아첨꾼과 간신배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대한제국의 국권 상실은 끝없는 당쟁과 반대 의견의 배척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옛말에 충언(忠言)은 역이(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이라 했다. 말은 적게 하고 쓴소리를 포함해 많이 들을 것을 정부에 권하고 싶다. 국책연구기관에 대해선 연구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연구발표를 보장해야 한다. 더불어 국록(國祿)을 통제의 족쇄로 이용해선 안 된다. 아량과 포용력의 발휘만이 갈라진 사회의 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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