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KBS 스타일

  • 입력 2005년 6월 3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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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여왕과 비틀스 사이 어딘가에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고품질 방송의 대명사로 영국인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BBC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뉴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방송의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세(勢)를 불려 온 민영방송의 도전에 직면했다. 마침내 BBC는 구조조정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2만7000명에 이르는 전체 직원 가운데 4000명을 감원한다는 내용이다. 방만 경영에 대한 시청자의 질책에 두 손을 든 것이다.

▷BBC와 함께 공영방송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본의 NHK는 직원들의 제작비 착복 비리가 터지면서 위상이 흔들렸다. 에비사와 가쓰지 NHK 당시 회장이 방송에 출연해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NHK에 있어선 안 될 일이 벌어졌다”며 사죄했으나 시청자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에비사와 회장이 퇴진하고 올해 처음으로 전년 대비 마이너스 예산을 편성했으나 일본인의 수신료 거부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 또한 공교롭게도 두 방송과 같은 시기에 위기를 맞았다. KBS는 지난해 638억 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800억 원 가까운 적자가 예상된다. 그러나 KBS가 내놓은 경영혁신대책은 BBC와 NHK와는 사뭇 다른 해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BBC는 방만 경영을 혁신하는 데, NHK는 신뢰 회복에 초점을 맞췄으나 KBS는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허용을 요구했다. 방만 경영에 따른 적자를 국민에게 부담 지우겠다는 무례함만 엿보일 뿐, 경영진의 책임의식이나 시청자에 대한 송구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KBS 스타일’인가.

▷임금 삭감과 인원 감축 등을 같이 내세웠다지만 수신료 인상을 위한 구색 갖추기의 측면이 강하다. 사실 오랜 세월 국민의 신뢰를 구축했던 BBC와 NHK는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를 불러 온 KBS의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KBS가 ‘몸집 줄이기’보다 수신료 인상에 매달리는 것은 아직도 시청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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