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현인택]‘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외관계

  • 입력 2005년 6월 3일 03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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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돼 가는 겁니까?” 만나는 지인마다 자조(自嘲) 섞인 소리로 묻는다. 일찍이 한국의 대외관계가 이처럼 혼란스러워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전통적 우방인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는 지금 최악이고, 그렇다고 해서 대(對)중국 관계나 여타 관계가 특별히 나아졌다는 징후도 없다.

이러한 것을 대가로 해서 남북관계가 개선된 흔적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고 한국의 외교 안보 정책은 전반적으로 표류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정부에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조직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지향하는 외교 안보 전략의 큰 청사진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그것을 수행하는 데 있어 연관 부처 사이의 조율이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위기로 치닫고 있는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북한이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고 이제는 6월 핵실험설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과연 이 문제를 정말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처하는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 남북 대화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여 일말의 기대를 가졌는데, 5월의 남북 차관급회담은 예상했던 대로 ‘비료 회담’으로 끝이 났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 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6·15 행사에 우리 정부 대표단을 보내는 것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북 대화의 통로가 유지된 것이 우리가 얻은 것이라고 할지 모르나 그 대화는 ‘행사성 대화’가 될 것이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대화에 집착하니 이제 거꾸로 북한이 우리 측에 일방적으로 행사 축소를 통보하면서 이를 역으로 남북관계의 카드로 쓰는 기현상(奇現象)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행사가 시작되면 우리 대표단은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주범은 미국이다”는 등 난무하는 구호 속에 파묻혀 버릴 게 자명한 이치다. 정부가 움직이는 매사에는 나름의 전략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 정부는 이러한 일련의 행보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전략적 사고를 담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미정상회담도 마찬가지다. 여러 현안이 있겠지만 북핵 문제가 가장 시급한 사안이라는 데에는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 양국의 방침으로 보아 추측하건대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북핵 문제에 대해 유연한 대응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한 방침이 좀 더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정말로 위기의식을 갖고 북핵 문제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식을 미국 측에 심어 줘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고사하고 미국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구도를 만들고 있는 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작전계획 5029’(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시나리오)도 조용히 논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한국의 ‘동북아균형자론’은 설령 약간 톤이 튀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장기적 비전을 표현한 것이라는 정도로 해서 불을 끌 수 있었던 사안인데, 이것저것 논리를 만든다는 게 일파만파로 번져서 이제는 구차한 변명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미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양국 정상 사이의 강력한 신뢰를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국민이나 세계가 한반도 문제가 어쨌든 잘 ‘관리’되겠구나 하고 안심하는 장(場)이 돼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일관계 또한 점점 더 골이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한국 정부와 대북 정보 공유가 어렵다는 폭탄 발언이 일본 고위 관료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가 강력 대응을 선언하면서 전선(戰線)이 또 하나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의 전략 환경 속에 어떻게 국가의 위기적 사안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스럽다. 대내적으로도 정부 부처의 관록 있는 관료들이 정말로 제 목소리를 내면서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닌가.

현인택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국제정치학교수 ithy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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