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세계언론인 공감 못얻은 盧대통령 언론관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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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흔여섯 살인 아프리카 수단의 언론인 마주브 모하메드 살리 씨.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 총회에서 언론자유 수호에 공헌한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자유의 황금펜’ 상을 받았다.

시상대에 선 살리 씨는 “정부의 억압 아래 언론의 독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투쟁”이라며 “투명한 세상을 위해 정보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고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총회장을 메운 82개국 1300여 명의 세계 언론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살리 씨가 상을 받기 전 총회장의 커다란 스크린에는 중국, 필리핀, 이라크, 베네수엘라, 쿠바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 탄압 현황과 피해 언론인들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비쳤다. WAN 사무국은 지난해 11월 이후 취재를 하다 피살된 언론인이 38명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지난 6개월간 필리핀에서는 9명의 언론인이 사망했고 포연이 멈추지 않는 이라크에서는 10명이 죽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언론인들이 그들의 보도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나 테러 세력들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정부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지나칠 정도로 자유롭다”며 언론 권력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바쁜 일정에 쫓긴 노 대통령은 살리 씨의 수상 소감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 탄압 현황에 대한 보고도 듣지 못한 채 총회장을 떠났다.

대통령이 떠난 뒤 개빈 오라일리 WAN 회장대행이 “한국의 언론 자유는 완벽하지 않다. 특히 언론 분야에 대한 법적 움직임(신문법)은 언론의 자유에 관한 국제적 기준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라고 지적한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언론이 권력이 됐다’는 노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참석자 대부분은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프리카의 노(老)언론인 살리 씨에게 박수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노 대통령과 세계 언론인들의 언론관 간의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문화부 김윤종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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