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영선]勞使 양보없이 상생없다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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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복지국가는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이며 소위 ‘강소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으로 노사간의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을 이루어 냈으며, 자국이 다시 경제침체에 빠져 든 후 8년간 총리로 일하면서 과감한 개혁정책을 주도한 빔 코크 전 총리의 지난달 30일 고려대 강연은 우리에게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강연장에서 들은 그의 첫마디는 “다른 나라의 모델은 수입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지 벤치마크나 학습의 대상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네덜란드의 노동시장 개혁의 요체를 자국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설명해 나갔다. 이웃나라에 오래 지배당한 역사와 국토가 모자라 간척지(polder)를 확장해 가며 언제 둑이 무너질지 모르는 긴박감에 눌려 있던 네덜란드는 자연히 공동체적 삶의 양식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경제모형은 폴더 모형이라 불린다.

폴더 모형의 중심에 바세나르 협약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온 네덜란드가 1970년대 말의 오일쇼크와 세계적 경제 침체, 그리고 과도한 복지 지출로 ‘네덜란드병’을 앓게 된다. 이때 온 국민이, 다시 말해 근로자나 사용자나 관료층이나 관계없이 긴박감을 갖게 되었으며, 이에 서로 한 발씩 양보하여 공동체적 승리를 얻어 낸 것이 바세나르 협약이라는 것이다.

이 협약에서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근로자들의 고용을 보장하였다.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며 시간제 근로자를 확대하면서 많은 일자리를 유지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다.

물론 이 협약이 간단히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공동체적 삶의 양식에 익숙해져 온 네덜란드 국민의 ‘사회적 대화’의 문화가 이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큰 창문이 달린 특이한 집 속에서의 그들의 열린 삶의 모습이 말해 주듯이, 노조와 경영자가 모든 것을 열어 놓고 서로 협의해 감으로써 상생하는 해결책을 찾아 간 것이다.

정부는 이 양자가 좀 더 나은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고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신뢰와 타협의 문화가 긴박감 하에서 윈윈 전략을 찾게 한 셈이다.

우리는 왜 신뢰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는가? 물론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탓이리라. 그러나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도 나름대로의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닌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결국 모두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사실도 이미 체험하지 않았는가? 이제 우리도 공동체의 선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말대로 우리의 노동시장은 민주화 과정 속에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버렸는지도 모른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기업단위 노조의 강한 투쟁성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 순화되어져야 한다. 근로자를 설득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한 경영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코크 전 총리의 말대로 개혁할 때는 협력과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최근 바세나르 협약이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화 과정에서 맞게 되는 지속적인 갈등을 네덜란드의 사회적 합의 문화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지 않고 인내하며 또 다른 합의를 이뤄 낼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한국형 폴더 모형을 인내심을 갖고 기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영선 연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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