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기태]묵직하고 꿋꿋한 세계지성들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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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한 세계 저명 작가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뭐가 있을까. 문장력과 상상력 같은 문학적 재능이 전부일까.

지난 며칠간 이들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이들이 한결같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공헌하는 의견들을 갖가지 국내외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외롭지만 꿋꿋이 지켜 왔다’는 점을 절감할 수 있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 씨는 지난해 말 “터키인들에게는 과거 아르메니아인을 대량 학살한 과거가 있다. 이를 자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 때문에 터키 민족주의자들의 위협을 받아 올해 초 미국 뉴욕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25일 주한 터키대사관저에서 만난 그는 그늘이라곤 조금도 없는 모습이었다.

미국에 사는 케냐 출신의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 씨 역시 지난해 8월 망명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조국을 찾아가 과거의 독재체제를 비판했다. 이 때문에 그는 독재 잔당 세력에게서 심야 테러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꿋꿋했다. 그는 언젠가 모국으로 돌아가 글을 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인 중국 작가 모옌(莫言) 씨는 25일 기자회견에서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으나 “고구려의 문화는 한국 문화”라고 주저 없이 밝혔다. 동독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독일 작가 볼프 비어만 씨는 “동서독이 통일됐지만 동독 사회주의 체제의 기득권층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씨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바꿔선 안 된다는 시민운동에 나선 나에 대해 정치가들이나 재계 실력자들은 ‘물정 모른다’고 말할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희망을 말하는 작가이며, 여생의 마지막까지 ‘평화를 위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오에 씨나 파묵 씨는 자국에서는 경외의 대상이면서도, 외면 받는 존재다. 그러나 그들의 거장다운 양심의 목소리는 부당한 힘에 짓눌린 힘없는 민초들에게 생명을 북돋워 주고 있다.

최근 안으로 움츠러드는 ‘내향성’ 문학으로 흘렀던 우리 작가들도 이제 국제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권기태 문화부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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