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나라 이끌 ‘청사진’ 있나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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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미일동맹은 큰 밑그림을 먼저 그려 놓고 세부 사안을 하나씩 확정해 나가는 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한미동맹은 미군기지 이전 등 구체적인 사항들에는 합의했지만 장기적인 동맹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그런 접근 방식의 차이가 지금 드러나고 있는 ‘뜨는 미일동맹과 지는 한미동맹’이 아닐까.”(국책 연구소 J 박사)

“한국의 역사교육은 일국사(一國史)에 치우쳐 있다. 예컨대 동학농민운동은 청일전쟁을 촉발한 계기였으며, 청일전쟁은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결정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동학농민운동을 마치 청일전쟁과는 별개의 일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세계를 보는 우리 시야가 좁은 것은 이런 식의 역사교육 탓이 크다.”(정부 산하 연구재단 Y 박사)

며칠 전 필자가 참여하는 공부모임에서 나온 말들이다. 한반도 주변 정세와 역사를 연구하는 사적인 모임이지만, 독도 문제로 시끄러운 때인지라 이날은 화제가 다양했다.

J 박사는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북한 관련 세미나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요즘 상황을 우려했다. 한국의 유화적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측의 회의가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는 “미국 일본은 찰떡궁합을 자랑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동북아의 외톨이가 돼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6개월간 한중일 역사교과서 분석 작업에 참여했던 Y 박사의 우려는 더 본질적이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의 교과서는 자국(自國)의 사건 하나하나를 그 당시의 국제적 맥락 속에서 분석, 기술하고 있는 점이 우리와 달랐다고 지적했다. 자기 나라 외교정책의 내용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중국 일본의 미래 세대를 우리 청소년들이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나 우리 역사교육의 문제점은 일견 별개의 사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안 모두 국가의 장기적 비전과 직결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 모임의 화제가 “우리는 국가의 미래를 담은 청사진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러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제 대(對)국민 서신에서 일본에 대해 “패권주의를 관철하려는 의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 하루 전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세력 판도는 변화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단호한 발언에 일부 국민은 ‘우리의 힘이 이렇게 세졌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궁금한 것은 노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이 치밀한 장기 전략을 바탕으로 해 나온 것인지 여부다. 초강경 대일 발언에 대해선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 발언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

이날 공부모임은 “한국은 아직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결론은 노 대통령이 좀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기 전까지는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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