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4년 채플린의 ‘소나기 사이에서’ 개봉

  • 입력 2005년 2월 27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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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극단이나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찰리 채플린(1889∼1977)은 1912년 말 어느 날, 뉴욕 한 모퉁이 아메리칸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었다. 채플린은 이때 공연을 보러 온 키스턴 영화사 사장 맥 세넷의 눈에 띈다.

그리고 2년 뒤인 1914년 2월 한 달 동안 ‘생활비 벌기’(2일) ‘꼬마자동차 경주’(7일) ‘메이벌의 이상한 곤경’(9일) ‘소나기 사이에서’(28일) 등 무려 네 편의 영화에 잇달아 출연한다. 찰리 채플린의 첫 영화출연이었다.

91년 전 2월 28일 개봉한 ‘소나기 사이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채플린 특유의 연기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초창기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다양한 몸짓으로 상황을 그저 설명만 하던 기존 배우들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새 코미디를 선보이는 것.

예를 들어 기존 배우들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나무에 부딪히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채플린은 부딪힌 뒤 나무에 사과하려고 나무를 향해 모자를 들어 보이는 행동으로 웃음을 유발한 것이다.

채플린은 ‘바보’ 연기를 통해 대중에게 어필했다. 그는 잘났다고 뽐내는 자, 힘만 믿고 난폭하게 구는 자들을 극중에서 끝내는 때려눕혔다. 그의 코미디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약자들에게 용기와 쾌감을 북돋워준 것이다.

그 보잘것없는 왜소한 체구가 무수히 매 맞고 쓰러지지만, 이내 용수철처럼 다시 발딱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배꼽을 잡았다. 그의 코미디는 관객들이 미처 연민을 느낄 새도 없이 반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채플린은 거지 신사의 모습을 통해 가짜 신사들을 조롱했고, 약자들을 대변했다. 형식주의와 기계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문명세계는 존립할 수 없다고 외쳤다.

코미디언은 단순히 연기에 그치지 않고, 때리고 넘어지고 뛰고 달리는 행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극배우와 다르다. 채플린은 “코미디언으로서 생명을 오래 지속하려면, 개성을 지녀야 하며 무엇이 우스운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교양과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채플린은 코미디에 사상을 불어넣은 사람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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