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대입 논술고사 첫 실시

  • 입력 2005년 1월 12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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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는 수단으로서의 측면과 목적으로서의 측면이 있다. 이 두 측면과 오늘의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현대인과 일의 보람’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혀라.”

1986년 1월 13일 실시된 서울대 논술고사의 문제이다. 당시 전국 63개 전기대 중 서울대를 포함한 53개 대가 논술고사를 대입 전형에 포함시켰다.

수험생들은 사고력과 분석능력, 주관적 가치관까지 평가하는 새 입시 제도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현대사회와 사람다운 삶’ ‘바람직한 한국인이 되는 길’과 같은 추상적 논제(論題)에 대한 주관적 서술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인가가 논란이 됐다.

또 논술고사 실시 대학이 △득점 수준이 중간대로 몰리는 ‘집중화의 오류’ △글씨가 점수에 영향을 주는 ‘인상의 오류’ △채점자 간 평가 기준이 다른 ‘표준의 오류’ △채점을 계속할수록 점수를 좋게 주거나 나쁘게 주는 ‘근접의 오류’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았다.

논술고사는 1986, 87년도 두 차례만 실시된 뒤 결국 폐지됐다. 정부가 내세운 이유는 ‘교육기능이 미흡하고 채점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찌감치 논술고사에 대비하기 위해 초등학생들까지 가세했던 작문 공부 붐이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당시엔 태권도 피아노 웅변학원에서도 ‘작문반’을 운영했었다.

이때 작문 공부를 그만둔 초등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무렵인 1994년, 논술고사는 홀연히 부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고교 내신 성적과 함께 대학별 고사가 입시 전형에 포함되면서 논술고사를 재도입하는 대학이 생겨났다.

논술의 벼락치기식 암기 과목화를 부추긴 것은 오락가락하는 교육정책이었는지 모른다. 수험생 중 무려 67.5%가 고교 3년생이 된 뒤에서야 논술 준비를 시작했다는 통계가 있다.

학교에서 논술의 기초인 독서와 글쓰기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탓에 수험생들은 사교육에 이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액 논술학원도 덩달아 성업 중이다. 한번쯤 ‘논술고사의 바람직한 미래’를 수험생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논술고사의 부침(浮沈)을 통해 본 한국 대입 전형 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책을 논하라.”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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