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77년 ‘크레이지 호스’ 마지막 전투

  • 입력 2005년 1월 7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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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1월 8일 미국 몬태나 주의 울프 산. 추장 ‘크레이지 호스’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800여 명의 인디언 전사들이 미군 기병대를 향해 말을 내달렸다.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치고 빠지는 기습 공격이었다.

하지만 금세 화력의 열세가 드러났다. 미군은 마차 사이에 대포를 숨겨놓고 있었다. 문명화된 무기가 일제히 불을 뿜자 인디언 전사들은 눈보라 속으로 서둘러 물러났다.

‘인디언의 전설’ 크레이지 호스(1842∼1877). 가장 용맹스러운 기마족으로 꼽히는 라코타 테톤 수우족의 추장. 백인이 정한 인디언 거주지역에 들어가기를 거부했던 그의 부족은 겨울 내내 미군에게 쫓기고 있었다.

크레이지 호스가 누구인가. 리틀 빅혼 전투(1876년)에서 미국의 제7기병대를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시켰던 인물 아닌가. 그는 수우족의 4대 덕목인 용기, 인내, 관대함, 지혜를 두루 갖췄다. 평생 단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고 단 한 발의 총알도 맞지 않았다. 수많은 추장들이 백인의 설탕과 커피와 위스키에 넘어갔지만 그만은 마지막까지 버텼다. “부족민이 걸어 다니는 땅을 팔아먹을 수 없다”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웅도 시대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부족의 현실은 참담했다. 여자와 어린이들은 물론 전사들도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치고 굶주렸다. 식량 공급원인 들소는 갈수록 찾기 힘들었다.

결국 4개월 후인 그해 5월 그도 투항하고 만다. ‘원하는 곳에서 살게 해주겠다’는 미군의 약속을 믿고 부족을 이끌고 스스로 포로가 됐다. 1월 8일의 전투는 생애 마지막 전투였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는 그해 9월 미군의 총검에 찔려 죽었다.

미군과 인디언이 중부 대평원을 두고 맞선 건 금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1874년 “풀뿌리에도 금이 묻어있다”는 내용의 미 육군 보고서가 나오자 1849년 캘리포니아에 이어 다시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인디언들은 삶의 터전과 생활 방식까지 고스란히 빼앗겨야 했다.

이라크전쟁을 단순히 테러리즘에 맞선 전쟁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아라비아의 석유는 인디언의 땅에 묻혔던 금이다. 21세기 중동에서 19세기 미국의 모습을 읽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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