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여야, 이번엔 방송법으로 흥정할 건가

  • 입력 2005년 1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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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까지 여야의 치열한 대립으로 시끄럽던 국회가 오랜만에 조용하다. 그러나 이 평온함은 오래 못 갈 것 같다.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국가보안법을 비롯해 여야가 처리하지 못한 법안들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이달 중순부터 재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 법안 중 국보법만큼이나 여야의 생각이 확연히 다른 것이 방송법이다. 신문법에 가려 쟁점화되지 않았을 뿐 여야가 제출한 방송법안은 여야가 서로 먼저 ‘2월 임시국회로 처리를 미루자’고 했을 만큼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SBS를 비롯한 민영방송의 규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방송사의 최다액 출자자 변경 시 방송위원회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방송위의 재허가를 받지 못한 방송사는 토지 등에 대한 국고 수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한나라당의 국가기간방송법은 KBS를 정조준하고 있다. 현 KBS 수입의 절반인 광고 수입을 향후 KBS 예산의 20% 이하로 낮추고 경영을 감시하는 경영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러한 양당의 안이 방송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기 위한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정략의 산물’이라는 의혹이 짙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의 방송법 개정안에 SBS의 보도를 못마땅해 하는 여권의 정서가 담겼다면 한나라당은 KBS의 ‘편파보도’를 손보겠다며 국가기간방송법을 낸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야가 관심을 기울이는 국보법 등 나머지 3개 쟁점 법안 협상 과정에서 방송법안을 카드로 사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양당 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조율돼 신문법처럼 돌연 ‘끼워 넣기 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 방송법은 공영방송에 대한 규정 미흡 등을 이유로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돼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개정은 정도가 아니다. 몇몇 관변학자를 제외하고 많은 방송학자가 여야의 방송법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략의 산물은 신문법으로 족하다.

이승헌 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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