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5년 수인선 협궤열차 운행중단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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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는 서서/기적만 울리고 좀체 떠나지 못한다//승객들은 철로에 나와 앉아/봄볕에 가난을 널어 쪼이지만/염전을 쓸고 오는/바닷바람은 아직 맵차다…’ (신경림 ‘군자에서’ 중)

아이들은 이 열차를 ‘꼬마 기차’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표준 철도의 궤간(두 바퀴 사이 간격)이 1.435m인 데 반해 수원∼인천을 오가는 이 열차의 폭은 그 절반가량인 0.762m였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승객의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한 누리꾼(네티즌)은 개인 홈페이지(http://petmoa.com/donghun)에 1980년대 이 열차의 풍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떤 아주머니가 함지박을 이고 열차에 오른다. 승무원에게 차표 한 장 달라고 한다. 승무원은 역에 아무도 없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 말이, 한 명 있는 직원이 자고 있더란다. (…) 건널목에 들어서기 직전 열차가 갑자기 멈춘다.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좌우를 살핀다.’

이렇게 마냥 한가로운 수인선 협궤열차에도 ‘잘나가던’ 시절은 있었다.

이 노선이 건설된 것은 1937년. 일제는 협궤열차로 경기 이천, 여주 지역의 쌀과 인천 소래, 남동 지역의 소금을 실어와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해갔다. 1960년대만 해도 증기기관차가 객차 6량과 화물차 7량을 달고 15개 역을 하루 7차례 운행했다. 증기기관차는 1970년대에도 디젤기관차와 번갈아 편성돼 옛 정취를 느껴보려는 주말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95년 12월 31일, 이 사랑스러운 기차는 멈추고 말았다. 사람들이 더 빠른 버스로 몰리면서 하루 평균 이용객이 250여 명으로 줄어 매년 적자가 20억 원을 넘게 됐던 것이다. 수인선은 복선 전철이 되어 2008년 재개통될 예정이지만 협궤열차가 철길을 당당히 달리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앞서의 누리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협궤열차는 철도박물관 한 귀퉁이를 차지한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녹슨 열차를 보여주며 아빠가 너만 할 때 저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갔었다고 얘기할 것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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