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귀걸이 법, 코걸이 법’

  • 입력 2004년 12월 14일 18시 15분


코멘트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8월 말 한 조찬회에서 “3년 뒤 시장감시 장치가 효과적으로 작동되면 출자총액규제 폐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두 손 들어 환영했어야 할 발언이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3년만 더’는 이미 귀에 익은 레퍼토리였던 것이다.

2001년 10월경이었다. 당시 경제부총리는 “출자총액규제를 앞으로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고, 공정거래위원장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되고 주가조작에 대한 감시기능이 높아지면 출자총액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약속한 3년이 흘렀고 집단소송제 시행을 한달 앞둔 지난주 목요일, 여당은 출자총액규제를 유지하고 대기업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30%에서 15%로 줄이는 공정거래법 개정 정부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정권과 사람이 바뀌었으니 정책도 변할 순 있다. 문제는 법을 개정한 배경이 석연치 않고 논리가 억지스럽다는 데 있다.

2002년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허용할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2001년 적대적 인수합병이 전면 허용됐는데도 우리나라에는 마땅한 방어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임원임면 정관변경 합병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금융계열사 의결권을 풀어줬다. 30%는 합병을 주주총회에서 가결시키는 데 필요한 의결권(67%)을 역산(逆算)해 나온 수치다.

반면 개정안은 왜 15%인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삼성을 겨냥했다고 볼 때만 충분한 설명이 된다. 4월 말 현재 이건희 회장 일가와 삼성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의결권은 17.8%다. 즉 20%, 25%는 삼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15%가 돼야 현실적인 압박이 된다.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면 출자총액규제를 받지 않게 한 시행령 조항을 없애겠다는 정부 방침도 마찬가지다. 3년 전 이 조항을 만들 때는 빚이 아닌 자기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든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작년 말 삼성의 부채비율이 100% 밑으로 떨어지자마자 말도 안 되는 조항이라서 없애겠단다.

이런 공정거래법도 두 손 들어야 할 법이 있다.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사업자 규정을 빌려다 ‘회초리로 충분한 매’를 몽둥이찜하려는 이른바 ‘언론개혁법’이다.

공정거래법은 시장점유율이 상위 1사 50%, 상위 3사 75%일 때 해당기업을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추정한다. 이 조항이 만들어진 이래 예외는 단 한번도 없었다. ‘언론개혁법’은 3000여 개 상품 중 유일하게 신문만 떼어내 30%-60%룰을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했는데도 동아 조선 중앙일보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볼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오자, 이번엔 점유율 산정대상을 일간신문에서 ‘서울에서 발간되는 종합일간신문’으로 좁히겠다는 것이다. 경제신문과 지방신문은 신문도 아니라고 보는 모양이다.

여론독과점이 문제라면서 방송은 왜 뺐을까. 문전옥답은 당연히 내 차지고, 재 너머 비탈밭은 내 몫 네 몫 공평히 가르자는 놀부 심사가 아닌가.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띠로 가리고 있다. 내 편, 네 편을 갈라서 보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무사하기 위해서다. 특정 기업과 특정 언론을 옭아매기에 급급해 귀에도 걸어보고 코에도 걸어보는 법안을 놓고 정의와 개혁을 팔아선 안 된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