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BBC만 국민의 돈으로 목욕할까

  • 입력 2004년 12월 10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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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는 국민의 돈으로 목욕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모델로 꼽히는 영국 BBC의 마크 톰슨 사장은 민영방송인 ‘채널4’의 최고경영자 시절 BBC를 향해 이렇게 질타했다. BBC에서 23년간 근무하며 TV본부장까지 지낸 ‘BBC맨’의 진단이기에 그의 발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5월 BBC로 복귀한 톰슨 사장은 3년간 전 직원의 10%인 3000명을 줄이고 매년 3억2000만 파운드의 경비를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을 7일 발표했다.

그는 “시청자들의 돈을 올바르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일본 NHK 방송의 수신료 징수원들은 요즘 시민들의 납부 거부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제작비 횡령, 수신료 착복, 엉터리 경비 청구 등 비리가 연이어 드러나자 참다못한 시청자들이 “수신료를 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기 때문.

지난달 말 현재 납부 거부는 11만3000건, 미수금만 10억 엔(약 100억 원)에 이른다.

BBC와 NHK는 특정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보도와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런 NHK도 내부 비리 때문에 수신료 납부 거부라는 곤경에 빠졌다. BBC는 시청자들의 질책을 받기 전에 방만 경영을 시정하겠다고 발 빠르게 나섰다.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가 수신료와 광고 수입을 모두 챙기는 반면 BBC와 NHK는 수신료만으로 운영자금을 꾸리고 모자라는 금액은 프로그램 해외 판매 등으로 충당한다.

KBS의 수신료 대폭 인상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통합 공과금에 포함된 탓에 방송내용에 불만이 있어도 납부 거부라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다.

KBS는 경영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시청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데 익숙해 있지 않나 반성해야 한다. 편향 편성과 방만 경영에 따른 시청자들의 반발은 ‘남의 일’이 아닌 KBS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경기 침체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 시청자들은 KBS를 ‘목욕’시킬 정도로 부자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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