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교수의 Really?]꽁꽁 얼어붙은 빨래가 어떻게 마를까

  • 입력 2004년 12월 7일 17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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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빨래도 시간이 지나면 감쪽같이 말라버린다. 얼음이 액체를 거치지 않고 기체로 변해버리는 승화현상 때문이다. 얼음 속의 물 분자들은 서로 단단하게 붙어있지만 그중에는 상당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분자들이 있다. 이들이 수증기 형태로 빨래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사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분자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다만 공기 같은 기체 분자들은 상자나 방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지만, 액체나 고체 분자들은 주위의 다른 분자들 사이에 마련된 좁은 공간 속에서 흔들리거나 회전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만약 얼음 분자들이 모두 똑같은 에너지를 갖는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얼음은 섭씨 100도가 훨씬 넘어야 액체 상태의 물로 녹을 수 있게 된다. 분자들의 세상이 정말 평등하다면 지구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덩어리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분자들이 움직이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총알처럼 날아다니는 ‘부자’도 있고, 굼벵이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가난뱅이’도 있다. 상온에서 물이 액체로 존재하는 이유도 분자들이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정한 온도와 압력이 유지되는 평형 상태에 있는 분자들의 에너지 분포는 언제나 똑같다는 점이 특별하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볼츠만이 알아낸 분자들의 에너지 분포에 따르면 상위 20%의 분자들이 총에너지의 46%를 차지하고, 하위 20%의 분자들은 겨우 4%의 에너지를 나눠 갖는다. 상위 20%의 부자들이 총자산의 80%를 갖고 있다는 실제 우리 생활에서의 모습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그리 평등한 세상은 아닌 셈이다.

언 빨래에서 ‘부자’ 분자들이 수증기로 빠져 나간 후에도 이 평형 상태는 유지된다. 계속해서 ‘부자’ 분자들이 빨래에서 탈출해 결국 빨래는 영하의 기온에서도 마를 수 있다.

하지만 분자들의 세상에는 영원한 부자나 가난뱅이는 없다. 엄청난 부자가 한순간에 파산을 하기도 하고, 무일푼의 가난뱅이가 순식간에 벼락부자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분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이 그 원인이다. 기체의 경우에는 그런 충돌이 1초에 무려 50억 번이나 일어난다. 분자들은 서로 충돌할 때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셈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duckhwa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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