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원식]차라리 공채를 발행하라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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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인터넷에서 벌어진 ‘국민연금의 비밀’ 논란으로 촉발된 국민연금 불신운동 이후 잠잠하던 국민연금 문제가 정부의 ‘연금 기금의 뉴딜사업 투입’ 방침 공개로 재연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동안 국민연금의 안정성에 대해 겨우 국민을 설득해 온 정부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연금의 수급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잠복해 있는데 국민의 합의도 없이 이를 정부가 끌어다 쓴다고 하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거부감을 다시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국민연금 건드리면 혼란만 초래▼

정부가 국민연금 정책을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첫째, 국민연금은 4800만 모든 국민의 실질적 이해가 걸린 문제이다. 따라서 어떤 변화도 국민이 동의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특정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일반 경제정책과 다르다. 국민연금은 선진국에서도 정권의 향방이 결정되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국민연금으로 인하여 정국이 다시 혼란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단순히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연금을 끌어다 쓴다는 것은 단견이다. 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누적되면 연금제도 자체가 무력화될지도 모른다. 노후 복지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국민연금을 대체할 새로운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만든다 해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하여 막대한 홍보비를 이미 지불했고 지금도 지불하고 있다.

셋째, 120조원의 연금 기금 가운데 단 10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이 무슨 큰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연금 기금은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단 1원을 써도 국민의 자산이기에 적절한 절차가 필요하고 동의를 요한다. 연금 기금은 정부의 권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금이 아니라 국민연금 보험료로 조성된 국민의 돈이다.

넷째, 현재 국회에는 국민연금정책위원회를 신설하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국민연금공단 조직의 비대화가 논란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공단 조직의 확대가 용인되는 것은 국민연금의 건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부족하나마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연금 기금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을 투자를 밀어붙인다면 그동안 정부가 연금제도의 안정을 위하여 들인 노력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자칫 국민연금 불신운동을 넘어서 폐지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겠다는 뉴딜 정책의 운영 방식도 문제다. 공공투자가 과거보다 고용 흡수 능력이나 경기부양력이 떨어지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공공투자가 진짜 이익이 되는 사업이라면 민간기업이 적극 참여하겠다고 달려들 것이다. 정부가 투자 수익률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보장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바로 세금이라는 국민 부담이 아닌가.

그래도 공공투자를 해야겠다면 정부가 직접 예산으로, 정부의 책임 하에서 해야 한다. 예산이 없으면 시장 이자율 이상으로 공채를 발행하고 국민연금이 구입하도록 하면 된다. 정부가 수익성 좋은 사업이라고 생색만 내고, 책임은 국민연금이 지도록 하는 것은 떳떳한 방법이 아니다.

▼공공투자는 정부 책임으로 해야▼

고령화 사회에서 국민연금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국민연금 없이는 사회가 안정될 수 없다. 과거의 고령화는 자녀의 부양 등으로 해결되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돌보아 줄 자녀도 없고, 또 있다고 해도 자기들 먹고살기도 바쁘게 된다. 따라서 국민 개개인은 스스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하여 국민연금 기금을 지키고 올바른 국민연금 정책이 시행되도록 감시도 하고, 협조도 해야 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국민연금 기금을 지키겠다고 했다. 부디 김 장관이 국민연금의 ‘순교자’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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