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7년 美, 러서 알래스카 매입

  • 입력 2004년 10월 17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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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전략적 가치와 자원을 지닌 그 넓은 땅을 러시아는 왜 헐값에 팔았을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의문이지만 당시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1741년, 베링이 이끄는 러시아 선단이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은 그곳을 ‘알류슈카’ 즉, ‘위대한 땅’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뒤 한 세기가 지나도록 변변한 산업이라고는 사냥과 모피무역 정도였다.

크림전쟁으로 많은 빚을 진 제정러시아 정부는 재정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현찰이 필요했다. 마침 세계적으로 모피가격이 폭락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냥꾼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상호 불간섭을 주장하던 ‘먼로주의’ 아래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아무런 적대관계도 없었다. 미 행정부로서는 캐나다의 영국 세력을 더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싶은 강박감도 컸다.

1867년 미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가 ‘알래스카 매입 법안’을 제출하자 상원은 난리가 났다.

“그렇게 큰 얼음통(Ice Box)이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 겁니까?”

“얼음이 필요하다면 미시시피 강의 얼음을 깨다가 장관 집이나 채우시오.”

법안은 단 1표 차로 비준됐다. 매입가는 720만달러. 에이커당 2센트에 해당하는 값이었다.

공짜나 다름없는 값이었지만 그 뒤로도 줄곧 미국인들은 이 땅을 본래의 이름 대신 ‘수어드의 바보짓(Seward’s folly)’이라고 불렀다.

미운 오리새끼가 백조로 변신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1897년 유콘 강 기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개막되자 이 외진 땅은 미국의 ‘방패’가 됐다. 공격 및 방어용 미사일이 북부지역에 밀집 배치됐다. 소련 정부는 이를 갈았다.

1950년대 시작된 석유 탐사 붐으로 1968년 푸르도 만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되면서 대박이 터졌다. 9년 동안 총연장 1300km에 이르는 송유관이 건설됐다.

1959년에야 미합중국의 49번째 주이자 가장 넓은 주가 됐지만 알래스카는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적은 인구(약 65만명)를 가진 주로 남아 있다.

어쨌거나 ‘위대한 땅’으로 이곳을 이름 지은 원주민들의 예지는 옳았던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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