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95년 아르헨대통령 페론 탄생

  • 입력 2004년 10월 7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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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이 태어난 날이다. 그는 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되는 포퓰리즘(populism)의 다양한 형태 중 ‘페로니즘’을 만든 주인공이다.

페론이 주목받는 것은 두 차례의 집권, 실각, 망명 등 드라마틱한 삶 말고도 가까운 역사 속에서 실패한 리더십의 전형적 사례로 꼽히기 때문이다. 세계 7대 부국(富國)이었던 나라를 망친 장본인이라는 평가는 지나치긴 하지만 그의 집권 이후 나라가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것을 알고 보면 비난의 화살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동화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소년의 엄마가 가정부로 일하러 떠난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여성이 3D업종의 외국인 노동자로 취업할 정도로 잘사는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페론이 집권한 20세기 중반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다.

1943년 쿠데타로 집권한 페론은 노동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연 20%가 넘는 임금인상으로 노동자 계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1946∼55년, 1973∼74년 두 차례나 대통령을 지냈다. 페론정권을 떠받친 세력은 군부, 좌파 정당, 노동조합, 민족주의자, 여성들이었고 그 이념은 친 노동자주의, 반미, 국유화였다.

페로니즘이 페미니즘과 닿아 있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젊은 야심가인 아내 에바 페론을 의식한 것이긴 했지만 49년 친권과 혼인에서의 남녀평등을 헌법으로 보장했고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수준도 남성과 평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페론이 태어난 후 대략 1세기라는 세월이 흘러간 지금 아르헨티나는 ‘너도 나도 가난한 사회’가 되었다.

페론은 어떤 측면에서는 동정심 많은 사람이었다. 약자에 대해 너그러웠으니 착한 사람이었고 삼류배우로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던 여자를 아내로 맞을 정도였으니 개방적인 사람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나라야 어떻게 되건 표만 모으면 되는 것임을, 아름다운 아내조차 정치가에게 재산인 것임을 일찍이 알아챈 야심가로 평가된다. 아르헨티나 작가 조지 루이스 보그는 “페론주의자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들은 단지 구제불능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꼽히던 부자 나라가 리더십의 실패로 몇 십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진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지난 몇 십년 동안 ‘성장’만 학습해 온 우리에겐 섬뜩한 일이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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