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철밥통’

  • 입력 2004년 10월 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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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취직하면 정년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안전판’이 무너져 내린 지는 이미 오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촉발된 이 현상은 7년이 다 된 지금도 현재진행형일 뿐 아니라 오히려 가속화되는 추세다. 어느 직업도 더는 ‘철밥통’일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몸값’을 올리는 자기개발에 열중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밀려나더라도 다른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월급쟁이의 생존은 이처럼 고달프다.

▷하지만 공직사회는 이 같은 현상에서 비켜서 있는 것만 같다. 어제 오늘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공무원들의 산하기관 재취업 사례는 공직사회의 ‘철밥통 지키기’가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근 2년 반 동안 문화관광부 퇴직자 47명 중 16명이 산하단체로 내려갔고, 금융감독원을 퇴직한 89명 중 42명이 금융기관 임원으로 재취업했다.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등도 마찬가지다. 재작년과 작년, 비리로 면직된 공무원 중 200여명은 다른 공공기관이나 공직자 윤리법상 취업 제한 대상기업 등에 취업했다.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인사가 산하기관으로 가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공무원 재직 경험이 산하단체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성도, 능력도 없는 인사가 주무부처에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 하나로 산하단체 주요보직을 꿰차는 것은 ‘노후대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산하단체 업무전문화에 역행하고, 인사숨통을 막아 조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금감원의 경우처럼 며칠 전까지 감사하던 사람이 피감기관으로 옮겨가면 감사가 제대로 되겠는가.

▷지금 우리의 고용사정은 최악이다. 어제는 대학 졸업생 10명 중 4명이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구조조정 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고 가족해체 현상까지 맞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누구는 운이 좋아 능력과 상관없이 한평생 호강을 누리고 있으니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직장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백수(白手)’들에게 ‘철밥통’은 그 존재만으로도 분통 터지는 일일 게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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