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청년실업의 정치학

  • 입력 2004년 10월 5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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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방도시 시청에서 전산직 9급 공무원 1명을 채용하는데 87명이 지원했고, 보건직 2명을 뽑는데 151명이 지원했다. 지원자의 95%가 대졸자였다. 9급 공무원은 과거 대졸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리다.

경제개발 초기인 1960, 70년대만 하더라도 대학 졸업생은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1970년 대학(전문대 이상) 취학률은 5.3%, 중학교 취학률은 36.6%. 작년 말 기준 대학 취학률은 55.4%다. 지금의 대졸자가 1960, 70년대 중졸자보다 더 흔하다는 이야기다. 통계 숫자를 놓고 보면 과거 초등학교 졸업자나 중학교 졸업자들이 일하던 자리에 대졸자들이 몰려든다고 해서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대학 졸업하고 3, 4년씩 취업 재수를 하는 청년들이 흔하다. 추석 때 만난 20대 청년들의 화두는 단연 취업이었다. 백수(白手)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것보다 참담한 현실은 없다. 취직을 못하면 장가들기도 힘든 세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 30대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연령별 인구 구성비를 보면 20대 19%, 30대 18.8%인 데 비해 50대 8.9%, 60대 이상 9.3%다. 50대 이상의 투표율이 높다고 하지만 젊은 사람들의 흐름을 바꾸어 놓기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다. 40대(12.4%)는 정치적 성향이 노인과 청년의 경계선상에 있다.

인구통계학자들에 따르면 젊은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정치와 시민사회의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젊은 인구의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노령 인구구조를 가진 나라보다 내전이 터질 확률이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젊은이들은 공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 알 카에다의 전사도 젊은이이고, 팔레스타인의 폭탄자살자도 젊은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월드컵의 열기를 몰아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도 젊은 유권자들이었고,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의 인파를 만들어 낸 것도 젊은 세대였다. 인구구성비만을 놓고 보면 다음 번 대선도 20, 30, 40대에 의해 결판나게 된다. 요즘 20, 30대 유권자들은 그들이 지지했던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올해 전국 대학의 취업률은 56.4%다. 절반에 가까운 대학생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붙잡은 일자리도 만족도가 낮거나 임금이 적은 서비스 부문이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제조업은 중국과 동남아로 탈출하고 있다. 취직이 ‘선택과목’이던 명문대 졸업자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마음을 태운다.

‘반노(反盧)’를 부르짖는 보수세력 집회에 몰리는 인파는 여권의 말처럼 ‘원래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자. 그러나 정권 창출의 기반이었던 젊은 층이 이탈한다면 열린우리당 정권은 더 기댈 곳이 없다.

1961년 이후 36년 동안 집권했던 보수세력이 정권을 잃은 데는 외환위기가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은 그 시절보다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대졸 백수들의 실망과 분노가 점점 커지는데도 정부 여당은 국정 우선순위를 한참 잘못 짚고 있는 것 같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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