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원로’란 말은 헌법에도 있다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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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란 말은 헌법에도 있다

원로논쟁이 종잡을 수 없어 헌법을 읽어봤다. 신통하게도 원로라는 말이 헌법에 있었다. 제90조는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해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국가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 역시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현행 헌법에 신설된 것이지만 곧 사문화(死文化)된 곡절이 있다. 이듬해 노태우 정부 출범과 함께 헌법에 따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가원로자문회의(원로회의) 초대 의장에 취임했으나 “대통령 직을 물려준 뒤에도 ‘상왕(上王)’으로 군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몰려 두 달도 못 가 하차했다. 그게 끝이었다.

▼위기 때 원로가 나서야 하는 이유▼

그 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전직 대통령 국무총리 대법원장 등으로 구성되는 원로회의 부활을 추진한 적이 있다. 선거용 여부를 떠나 집권 후 정치보복금지 공약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어서 15년 전과는 출발점이 달랐다. 그대로 됐다면 지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원로회의 의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국가원로는 헌법용어다. 그리고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원로회의의 역할이나 구성원을 볼 때 국가원로의 기본요건은 ‘국정경험’이라고 하는 게 타당하다. 따라서 사회원로나 재야원로와는 의미가 다른데, 혼용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전환기에 원로회의 논의가 부상한 것만 보더라도 이 제도는 정치적 격변에 따른 충격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임을 알 수 있다. 그 원형은 국가를 융성케 한 공로자들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천황의 종신고문으로서 정부를 후견하고 감독한 근대 일본의 ‘겐로(元老)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겐로의 자격은 엄격해 1940년까지 50여년 동안 9명만이 명예를 누렸다. 그중 최초의 겐로인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6명이 총리 출신. 겐로정치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최후의 겐로인 사이온지 긴모치의 우려대로 그의 사망 후 일본 정치가 급속히 조화와 균형을 잃고 파국으로 치달았다는 사실이다.

이념대립이 격심했던 상황에서 신생국 대한민국의 헌법을 기초했던 유진오 선생이 고심한 것 중 하나도 정치적 완충과 통합이었다. 당초 양원제를 선호했던 그가 1948년 제헌의회에서 밝힌 ‘헌법의 제안이유’ 중 각국의 양원제에 관한 조심스러운 설명은 지금도 시사점이 있다.

“민의원 이외에 참의원이라고 하는 것을 두는 것은 거기에다가 보수적인 세력을 집결시켜서 민의원의 자유로운 활동을 견제하는 것이라고 하는 유력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각국에 있어서의 양원제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사실 민의원은 항상 급진적인 경향을 대표하고 참의원은 보수적인 경향을 대표해서….”

굳이 따질 것도 없이 나라가 어지러울 때 원로들이 나서는 것은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건국 60주년이 코앞인데 그런 원로들조차 없다면 오히려 국가적 불행이 아닐까. 또한 경험이 많을수록 신중해지는 게 섭리다. 즉, 나이 든 분들이 시국 현안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시각을 갖는 것은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집단매도는 미숙한 사회의 징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원로논쟁은 건강하지 않다. 주장의 당부(當否)를 논하기 전에 성향이 다르다고 무조건 “당신들은 원로 자격이 없다”고 몰아붙이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원로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 사람들도 없지 않겠지만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고 불순하다.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측이 들이대는 잣대부터 의심스럽다. 그들은 도덕성을 거론하지만 그보다는 당파성을 얘기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사실 현 시점에서 경제와 안보 현안 해결에 국력을 집중하라는 요구는 누가 해도 옳다. 그런데도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의 말이라고 해서 귀를 틀어막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미숙한 사회, 옹색한 정치의 징표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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