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비디오 증언

  • 입력 2004년 9월 2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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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겠다’는 서약을 하고서 행하는 법정증언이 모두 진실이라면 법관들은 판결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맹세해 놓고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 중에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증언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서 사람에 따라 평가와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억력에도 한계가 있다.

▷민사재판에서는 증언보다는 문서로 된 계약서 한 장의 증거 능력을 더 높이 쳐준다. ‘열 증인보다 문서 한 장이 낫다’는 말이 있다. ‘김희선 의원의 부친이 만주국 경찰을 했다’는 월간조선 보도를 놓고서도 친척들의 말이 엇갈린다. 처음에 했던 말과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하는 말이 달라지기도 한다. 김 의원 부친의 직업과 관련해서도 김 의원 쪽이나 월간조선 쪽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는 일제강점기 기록을 찾아낸다면 10명의 증인이 나와 기자회견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것이다.

▷외국의 법정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민사재판에서도 증인을 불러 물어야 할 일이 많다. 정확하게 문서를 남기지 않고 구두로 계약을 하는 관행이 상거래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증언의 증거능력을 높이 쳐주지 않는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는 법정증언이 매우 중요하다. 문서로 된 증거를 남기며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은 없을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나 범죄 피해자, 사건 관련자의 법정증언에 따라 피고인의 유무죄가 갈라지기도 한다.

▷조직폭력이나 마약범죄의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법정에서 증언하기를 두려워한다. 성폭력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법이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증언할 수 있도록 법정 옆에 ‘비디오 증언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 피고인은 대형 모니터를 보며 재판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피고인에게도 방어권이 있다. 비디오 증언은 아무래도 피고인과 증인이 얼굴을 마주보며 질의 답변을 하는 것만 못할 것 같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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