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57>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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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韓) 태위 신(信)이 항복한 한왕(韓王) 정창을 앞세우고 낙양으로 온 것은 한(漢) 2년 동짓달 초(初)이렛날이었다. 성밖까지 나가 한 태위 신을 맞은 한왕 유방은 크게 잔치를 열어 싸움에 이기고 돌아온 장졸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흥겨운 잔치가 끝날 무렵 한왕은 여럿에게 알리듯 말했다.

“한 태위 신은 모든 것을 내던져 한나라 땅을 되찾고 정창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제 왕이 되어서 자신이 싸워 얻은 땅을 다스릴 만하다. 신을 새 한왕(韓王)으로 봉한다.”

그 말에 곁에 있던 사람들은 비로소 며칠 전 한왕이 한 말의 뜻을 알아들었다. 관중에서나 하남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분봉(分封)을 시행한 것이었다. 그 뒤로도 한왕 유방은 종종 공을 세운 제후를 왕으로 봉하여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행시켰는데, 이 또한 정치제도나 통치방식에 대한 그의 유연한 자세를 짐작케 한다.

하루아침에 왕이 된 태위 신이 큰 키를 굽혀 절하며 사양하는 시늉을 했다.

“신(臣)은 대왕 곁에서 함께 싸우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온 한낱 무장입니다. 왕이 되고자 천리 길을 내달으며 싸운 것이 아닙니다. 부디 신에게 과분한 명은 거두어주십시오.”

그러나 내심으로는 은근히 바라고 있었음에 분명했다. 그가 쓰고 있는 기치와 의장(儀仗)은 ‘한(韓)’으로 벌써 한군(漢軍)과는 달리 쓰고 있었다. 이끌고 온 군사도 그랬다. 그새 1만으로 부푼 그들은 차림부터 번쩍이는 갑옷으로 치장한 듯 이채로웠는데, 그 사이 스스로를 한군(韓軍)이라 일컫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왕 유방이 다시 한번 엄하게 권했다.

“공을 세워도 보답이 없으면 누가 목숨 걸고 싸우려 하겠는가? 한왕(韓王) 신은 너무 겸양하지 말라.”

태위 신이 못이긴 척 한왕 자리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대왕의 지엄한 분부라 따르기는 합니다만 신은 어디까지나 대왕의 손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대왕 곁을 한 치도 떠나지 않고 목숨을 던져 안위를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한왕(韓王) 신은 자기 군사 1만과 더불어 언제나 한왕(漢王) 유방 곁을 지켰다. 그 뒤 몇 번의 반복(反覆)이 있고, 마침내 한왕 신은 흉노의 앞잡이가 되어 한(漢) 제국(帝國)에 베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것은 또 그때의 일이다.

하남왕 신양에 이어 한왕 정창에게까지 항복을 받아내자 한군(漢軍)의 기세는 더욱 크게 떨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동에서 따라온 장수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그대로 승세를 타고 동쪽으로 쳐나가기를 한왕 유방에게 졸라댔다. 매사에 생각 깊고 조심성 많은 장량이 다시 장수들을 말렸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장군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오. 항왕이 여러 달 째 팽성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있다 해서 강대한 진나라를 쳐부수고 천하를 제패한 그 힘이 줄어든 것은 아니요. 그가 한번 움직이면 산이 뽑히고 바닷물이 넘치는 변고를 당할 것이니, 자는 범 콧등에 침을 놓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오. 먼저 사람을 풀어 팽성의 공기를 살피고, 항왕의 예봉이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를 알아본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이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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