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國保法, 형법에 흡수는 곤란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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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은 1948년 정부수립 직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존속된 몇 안 되는 법률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최근 여권의 강력한 폐지 움직임에 의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정권의 유지를 위해 남용된 ‘전력’ 때문이지만, 과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뜨겁다.

▼폐지-개정 논란에 갈등 증폭▼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쟁을 살펴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보안법의 문제점 내지 폐해에 대한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에 관해 개정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폐지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보면 견해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은 듯도 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국가보안법의 존치 필요성을 지적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이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함으로 인해 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국론 분열로 비치는 양상까지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있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대한 찬반이 마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대체입법 대신 일반 형법으로의 흡수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갈등이 더욱 증폭되는 점도 크다.

하지만 우리가 진보와 보수를 따지기에 앞서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관련해 차분히 정리해야 할 점들이 있다. 과연 국가보안법은 절대로 폐지돼서는 안 되는 법인가. 또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경우에는 형법으로 흡수하는 것이 가능하고 바람직한가. 만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할 경우의 장단점은 어떠한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막연한 찬반논쟁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전제돼야 할 것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개정이나 폐지가 위헌은 아니며, 국회의 권한범위 내에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의 합헌성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개정이나 폐지의 위헌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정치적 판단에 맡겨질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으로 흡수하는 경우의 장단점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남용의 문제는 원천적으로 해소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공법의 선례는 반대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국가보안법 못지않게 남용되었던 반공법은 1980년 폐지되었지만, 그 주요내용이 국가보안법에 흡수됨으로써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부추겼던 것이다. 이를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이를 형법에 그대로 흡수할 경우 오히려 형법의 남용이 문제될 수도 있다. 더구나 일반 형법 안에 국가안보에 관한 모든 규정을 수용하기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대체입법 생각해 볼수도▼

그렇다고 국가보안법을 존치할 경우에는 아무리 문제 조항을 개정하더라도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 어렵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되살아날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라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의 현실적 대안은 형법으로의 흡수가 아닌 대체입법이 되어야 한다.

실제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국가안보에 관한 특별법을 두는 경우가 많고, 형법만으로 규율하는 예는 오히려 흔치 않다. 우리의 경우 과거의 부정적 경험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 하더라도 대체입법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체입법의 경우도 반공법 폐지 후 국가보안법의 선례를 따르지 않도록 신중한 입법 및 법적용이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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