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0년 레온 트로츠키 피살

  • 입력 2004년 8월 19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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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가 레닌을 승계했다면?

이 불가능해 보이는 역사의 가정(假定)은 1922년 5월 레닌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만 해도 너무 당연해 보였다.

트로츠키는 절대적인 우위에 있었다. 그의 경력과 카리스마는 동갑내기인 스탈린을 압도했다.

레온 트로츠키. 그는 러시아혁명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지성과 통찰은 레닌을 월등히 앞섰고 레닌에게조차 그는 우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실패한 지도자였다. 더할 수 없이 오만했고 동료들은 하나 둘 적으로 돌아선다. “1인자가 되기에는 덕이 부족했고 2인자로 남기에는 열정이 넘쳤다.”

이 불운의 혁명가는 함께 고통을 나눌 줄은 알았으나 투쟁의 열매를 함께 나눌 줄은 몰랐다.

반면에 스탈린은 냉혈한이었다. ‘철의 사나이’는 현실주의자였다. 그에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공포와 회유’였다.

실권을 쥔 스탈린의 ‘사냥 리스트 1호’는 트로츠키였다.

1927년 그는 공산당에서 제명됐고 그 이태 뒤 해외로 추방된다. 그러나 터키 프랑스 노르웨이를 전전하면서도 트로츠키의 고개는 변함없이 꼿꼿했다. 날카로운 펜 끝은 스탈린을 겨냥하고 있었다.

스탈린이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장악하자 제4인터내셔널을 창설했고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에 맞서 ‘영구혁명론’을 주창했다.

스탈린은 ‘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였다. 그는 스탈린의 공개재판을 격렬히 비난했다. “피의 강물이 볼셰비즘과 스탈린주의를 갈라놓았다!”

1940년 8월 20일 트로츠키는 마지막 망명지였던 멕시코에서 비참하게 살해된다.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비밀요원은 피켈로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혁명은 시대의 궁핍에 대한 표현”(마르크스)이라고 했던가. 트로츠키 자신도 이런 말을 남겼다. “혁명도 전쟁과 마찬가지로 유죄(有罪)를 선고받아 마땅하다….”

가혹한 운명은 사후에도 이어진다.

스탈린은 교과서와 역사 논문에서 그에 관한 부분을 송두리째 오려냈다. 러시아혁명기에 찍힌 사진에서 그는 모습을 감추었다. 필름 조작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언제나 숙청을 예고하는 불길한 장송곡이 되었다.

그는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그 트로츠키의 망령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떠돌고 있다 하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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