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 환상의 물매’…말-살-마음을 엮는 건축술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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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환상의 물매/김영민 지음/264쪽 1만1000원 마음산책

강단 인문학의 파행을 지적하는 한편 논문을 박제화된 글쓰기라며 비판해 온 김영민 교수(한일장신대 인문사회과학부)가 쓴 사랑론이다. ‘성애론’이나 ‘연애론’이 아니라 ‘사랑 분석서’이며 ‘사랑’을 코드로 ‘사람과의 관계’를 말하는 인문학자의 통찰을 적은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에너지는 ‘일과 사랑’이다. 이 완고하면서도 오래 묵은 강렬한 에너지(사랑)를 잘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에 대한 마음의 낭비를 지양하고 사랑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마음’이라는 정신적 단어에 ‘낭비’라는 물질적 단어를 섞은 저자의 말대로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쓸데없이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들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래의 낭만주의로부터 반성 없이 이어져 오고 있는 ‘사랑’이라는 신화, 연애 상업주의, 진부한 언어들로 사랑의 진행을 재촉하는 온갖 이야기들에 속지 말라는 거다.

저자는 사랑을 ‘연하디 연한 놀이’라고 말한다. ‘말’과 ‘피부’(혹은 살), 그리고 없을 것만 같은 ‘마음’을 재료로 엮는 건축술이기에, 무슨 무거운 본질을 부여하거나 무겁고 둔탁한 몸을 의탁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연하게’ 연애하는 것인가?

그가 주는 조언은 ‘마음의 삭제’ 혹은 ‘마음의 최소주의’다. 마음을 주려고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며 무엇보다도, 알고도 모른 체해야 한단다.

‘어차피 열정이란 그 속성상 휘발하게 되는데 결국 휘발을 재촉하는 묘기를 부릴 것인지, 아니면 열정의 분배를 통해서 지속 가능한 애정의 형식을 개발할 것인지 하는 것이 문제’이므로 ‘오히려 우리 일상에 관한 한 분배와 지속 가능성이 더욱 바람직한 미덕이니, 사랑의 열정도 굳이 불꽃처럼 산화할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랑의 본질은 ‘측은한 에로티시즘’이다. 예로부터 인문학 공부의 기본이 말에 대한 측은지심이었듯 연애의 기본도 살에 대한 측은지심인데 좋은 연애란 이 두 가지(말과 살)의 측은지심이 겹치면서 만드는 무늬의 섬세한 여파라는 것.

제목에 쓴 ‘물매’는 경사도(傾斜度)를 뜻한다. ‘사랑은 열정의 기울기에 따른 사소한 차이들의 나르시시즘’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응축한 것이다. 3년 동안 천천히 써 온 글답게 문장과 단어가 워낙 농밀하여 잠언집이나 시집에 가깝다. 간결하고 쉬운 당의정 문장에 익숙한,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할 젊은 독자들이 과연 그의 글을 곱씹으며 읽을 수 있을까 안타까이 여겨질 정도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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