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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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김용희 지음 임종진 찍음/283쪽 샨티 1만1000원

‘1998년 4월 18일, 우리는 서울을 떠났다! 큰 도시 서울의 삶에서 나왔다! 이제 우리 가족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서나 함께 있을 수 있고 또 함께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떠남

저자 김용희씨(44)는 5남매의 어머니다. 쌍둥이처럼 닮은 선목(15), 주목(12), 일목(11), 화목(10) 네 아들과 이제 여덟 살이 된 막내딸 원목을 가졌을 때까지 그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10년간 약국을 운영한 약사였다. 친정아버지는 밥을 굶더라도 정직한 약사가 되라 했고, 대학강사인 남편 김명식씨도 양심적인 지식인이 되고자 했지만 그러려면 “도시에서 아이를 다섯씩이나 낳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조제실과 기저귀빨래가 널린 살림집을 종종걸음하며 매일 지쳐가던 어느 날. 제주 출신의 부부는 강원 화천군 선이골로 삶터를 옮겼다. 아이들은 부부가 가르치기로 했다. 그로부터 7년째. 가족은 제 먹을 쌀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밥상에는 감자, 앉은뱅이강낭콩, 옥수수, 밤호박, 갖은 산나물들로 넉넉하다.

●하늘평화학교

‘비나 눈이 와서 들일을 할 수 없을 때 우리 가족은 편지를 쓴다. 전화와 컴퓨터가 없는 선이골. 이곳에서 우리의 유일한 통신수단은 편지다.’

마을로부터 걸어서 1시간 거리인 선이골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5남매에게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조차 낯설다. 보고 싶은 사람,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아이는 편지를 써야 하고 일기를 남겨야 한다. 아이들은 말과 글을 이렇게 깨쳐 간다.

5남매의 학교 이름은 하늘평화학교. 교과목의 첫째는 그림그리기다.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부모는 손가락 힘을 가늠하고 글자 공부시킬 시기를 정한다. 아이들의 관심과 관찰력도 살핀다. 둘째는 수학공부. 글자공부보다 먼저 수를 익힘으로써 추상과 상징의 부호인 글자의 세계로 이끌려는 생각이다. 겨레말·글공부, 자연으로부터 배우기, 농사짓기, 역사공부, 편지쓰기…. 바느질도 빠질 수 없는 교과목이다. 마음이 산란할 때 부모와 아이들은 바느질거리 앞에 앉는다.

●스승들

한 달에 3번꼴, 선이골 식구들이 찾는 화천 3·8 5일장은 가족들의 또 다른 학교다. 톱 가는 아저씨, 옷가게 아주머니, “아이들이 많아서 반찬도 많이 필요할 거야”라며 늘 인심을 얹어주는 광준씨네 야채가게, “자연생활을 아무나 하는 게 아냐. 철학이 있어야지” 한 말씀을 빼놓지 않는 멋쟁이 과자장수 아저씨, 다리쉼을 하는 민하네 과일가게…. 각양각색의 물건, 각양각색의 사건과 이야기가 있는 5일장에서 일곱 식구는 ‘사고파는 행위’만 남은 거래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배운다.

‘신세진다는 생각, 도움 받은 만큼 내 쪽에서도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도시 사람의 강박임을 화천의 새로운 스승들은 깨우쳐 준다.

●남편을 다시 만나다

선이골에 뿌리내리기까지 저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이들 교육도, 선이골 개간도, 농사짓기도 아니었다.

“하루 24시간, 저 ‘웬수’인 남편과 같이 있어야 하고 어쨌거나 한밥상에서 밥을 먹어야 했다. 오로지 남편만이 힘들었다.”

도시에서 동지인 줄 알았던 두 사람은 진저리쳐지는 원수가 됐다. 서로가 변해야 했다. 남편은 가끔 도시로 하루 이틀 혼자 나들이를 떠났다. 남편이 없을 때 느낀 것은 해방감이 아니라 뼈가 스르르 녹는 무서움과 허망이었다. 밥상 앞에서 아이들에게 하던 말이 고스란히 아내에게 돌아왔다.

“어떤 귀한 음식도, 잘 차려진 맛난 음식도 혼자 먹어봐. 맛이 있을까. 가장 맛있는 음식이 어떤 음식일까?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은 사람, 그리운 사람과 같이 먹는 거야.”

남편과 아내는 선이골에서 서로를 다시 만났다.

●젖니를 뽑다

선이골에 들어와 가족들은 제 몸 안에 있던 자연의 시간을 찾아냈다. 달력이 알려주지 않아도 봄은 2월 초에 시작되고 여름은 5월 초, 가을은 8월 초, 겨울은 11월 초에 시작되는 것을 산천의 변화와 몸을 통해 알게 됐다. 도시 아이들은 치과에 가야만 뽑을 수 있는 줄 아는 이를 혼자 뺀 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처럼, 일곱 식구는 결코 오만하지 않게 존재의 귀함을 알아간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걷고, 아무런 애를 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젖니가 빠져 튼튼한 영구치가 나오고, 다만 밥 먹고 똥 싸고 잠잘 뿐인데 점점 키가 자라고 힘이 세지고 어른이 되고…이 놀랍고 기적 같은 일이 우리 몸 안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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