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자조섞인 '복무지침' 화제

  • 입력 2004년 8월 4일 1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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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경찰관 2명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 최근 경찰 관련 사이트들에선 자조 섞인 우스개 게시물이 돌고 있다.

일종의 '복무지침' 형식으로 쓰인 이 게시물은 '복지부동해 정년퇴직할 때까지 월급받고 살 경찰관'들에게 참고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 첫번째 권고사항은 폭행 신고 출동시 가능한 신호등이 많은 도로를 이용해 시간을 끌라는 것. '빨리 도착하면 싸움하던 놈들이 경찰관 보고 더 흥분한다'는 게 그 이유다.

대신 늦게 가서 술 마신 부분에 대해서만 사건 처리하고, 도망간 사람 발생 보고만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복무지침'은 권고한다.

두 번째 지침은 절도 등 기타 신고 출동시 용의자가 없을 경우 모든 사건에 대해선 반드시 발생 보고하라는 것. 사건이 늘어난다고 지휘관들이 뭐라 해도 그렇게 해야만 징계를 안 먹는다고 '복무지침'은 충고한다.

세 번째는 용의자가 있을 경우 전방 10미터 앞에서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를 3회 반복하라는 것. 잡힐 경우엔 피의자를 검거하고 도망가면 발생 보고하면 되지만, 반항하면 '난처하다'고 이 '복무지침'은 전했다.

총을 쏘면 과잉 반응이라 하고, 안 쏘면 안 쐈다고 뭐라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러한 경우를 만들지 말라는 게 '정년퇴직 때까지 월급을 받기 위한' 지침이다.

대신 용의자가 반항할 땐 '좋게 잡히지 않으려면 그냥 도망가달라'고 설득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

'복무지침'은 또 교통법규 위반 단속시 법규를 인정하고 면허증을 제시한 사람은 '눈 감고 끊으라'고, 법규를 인정 안하고 따지는 사람은 '얼른 보내라'고 충고했다.

말싸움을 하면 당장 그 다음날 청문감사관실에 불려가서 사유서를 쓸 뿐더러, 인터넷 민원 맞고 사유서 쓰다보면 근무 못하는 경찰관으로 낙인 찍힌다는 까닭에서다.

'복무지침'은 마지막 사항으로 '진급을 하고 싶다면 절대로 수사과 형사계 조사계 경비교통과 교통사고조사계는 근무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런데 가면 일만 X나게 하고 징계 먹고 잘못하면 죽는다'는 것. 대신 가능한 많은 '빽'을 동원해 일 적고 상 많은 부서로 가서, 상훈점수를 채워 진급하라고 이 '복무지침'은 주장했다.

일선 경찰들은 이같은 '복무 지침'에 대해 "오죽하면 이런 우스개가 나오겠느냐"는 반응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의 한 수사관은 "범죄는 날로 흉포해지는데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돼 있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준 기자 zz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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