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軍, 장관 사임 계기로 다시 일어서라

  • 입력 2004년 7월 27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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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북방한계선(NLL) 파문이 끝내 조영길 국방부 장관의 사임 표명으로 이어졌다. 이에 앞서 합참 정보본부장(중장)이 보직해임되고 해군작전사령관(중장) 등 장성 2명과 영관급 장교 3명이 경고를 받았다. 14분간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남한 군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것이다. 총 한 방 쏘지 않고 남한을 흔들었으니 북한 지도부는 지금쯤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파문의 핵심은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이다. 보고 누락과 교신상황 공개는 곁가지일 뿐이다. 청와대가 북의 도발과 보고 누락의 경중(輕重)을 제대로 가렸다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가 문제 삼은 보고 누락은 인사고과에도 반영되지 않는 경고에 해당하는 경미한 잘못이었음이 드러났다. 어이없는 자중지란(自中之亂) 아닌가.

군을 관리하는 국방부 장관이 혼란의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조 장관은 스스로 밝힌 대로 군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몰아넣고, 나아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북한 경비정과의 무선교신 보고 누락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국회에서 “해군작전사령관이 교신 유무를 상급 부대에 보고할 경우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질 것을 우려해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혀 혼란을 가중시켰다. 경징계를 지시한 대통령의 의도에 배치될뿐더러 군 내부의 이견을 불필요하게 부각시킨 경솔한 발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 장관 재임기간 국방부는 갖가지 사건으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 왔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매끄럽게 추진하지 못했으며,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장성들의 비리와 고등훈련기 도입 등 무기도입사업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군은 구태를 벗고 환골탈태하라는 여론의 질책이 계속됐다.

정부와 군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많은 것을 고쳐야 한다. 장관을 교체한다고 해서 저절로 될 일이 아니다. 우선 북의 의도적 도발에 허둥댄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해군 지휘관이 왜 ‘교신상황을 보고하면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질 것을 우려’하는지, 군에서 왜 ‘NLL을 지켜도 다치고, 지키지 못해도 다친다’는 탄식이 나오는지, 북은 왜 NLL을 계속 침범하고 핫라인은 먹통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정부와 군의 진솔한 대화가 시급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청와대 사람들과 생사를 걸고 북과 대치 중인 군을 가로막고 있는 불신의 장벽부터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과의 핫라인 합의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군은 허점이 드러난 보고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 사태로 잠시나마 우리 군이 혼란에 빠진 것은 유감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와 군이 신뢰를 회복하면 국민이 군, 정부, 대통령을 믿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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