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투라의 일기’…이라크판 안네의 일기

  • 입력 2004년 7월 23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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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라의 일기/투라 알 윈다위 지음 한경심 옮김/252쪽 8500원 동아일보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너희들 모두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들 중 어느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빈다. 내가 없더라도 나를 기억해주길.’ 학교를 나오면서 친구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은 내 생애 가장 슬픈 순간이었어. 아, 나의 일기장, 너에게 ‘안녕’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싶어. 내가 살아서, 다시 이 친구들을 볼 수 있을까?”

굳이 ‘안네의 일기’를 꼽지 않더라도, 때로는 한 권의 소박한 일기장이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 감동을 주고, 그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게 전쟁의 현실을 알려준다.

이 책은 19세의 평범한 이라크 소녀 투라가 이라크 전쟁 직전인 2003년 3월 15일부터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한 같은 해 6월 4일까지 쓴 일기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이 알 수 있도록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 투라를 통해 전쟁 한가운데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2003년 3월 20일. 전쟁이 시작됐다. 1991년 걸프전을 겪었던 어른들은 폭격 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들을 달랜다. “이젠 이런 소리를 매일, 하루 종일 듣게 될 테니 익숙해져야지.”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단다. 불꽃이 몇 번 슈우웅 하고 올라가서 터지고 나면 끝이야.”

하지만 투라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우리 같은 소녀들은 나중에 폭탄 때문에 임신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며 두려움을 고백한다.

바그다드 함락 열흘 전인 3월 31일의 일기.

“양초를 찾으면 이번엔 또 성냥을 찾느라 야단법석을 떨어야 해. 겨우 촛불을 켜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면 비로소 우리는 함께 모여 앉아 미사일 폭우가 쏟아지길 기다리고. 그리고 미사일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 폭우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며 희미한 불빛 속에 앉아 있는 거야.”

4월 9일. 마침내 바그다드가 함락됐다. 투라는 일기에 “정말로 특별한 날”이라고 적었다. 투라는 미군 병사가 쓰러진 후세인 동상의 머리 부분을 성조기로 감싸는 광경을 TV로 보면서 고통스러웠다고 썼다. “내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면서 공허감이 몰려오고 눈물이 앞을 가렸어.”

전쟁이 끝나면서 물가가 폭등하자 투라는 분노한다. “사람들은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그걸 다시 암시장에 내다 팔기도 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나라는 산유국인데 말이야!”

투라는 또 “예전엔 거리에서 여자들이 봉변을 당해도 소리 한 번 지르면 다들 달려와 구해줬지만 이제는 서로서로를 겁낸다”며 전쟁 후 달라진 모습에 서글퍼한다.

투라는 마지막 일기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무리 많은 미사일을 내 머리 위로 쏟아 붓더라도 미국에 가고 싶다”고 밝혔다.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에서 죽어간 미군의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싶다고 썼다.

투라의 일기는 영국 더 타임스 기자의 눈에 띄어 올해 초 영국에서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을 계기로 현재 투라는 바라던 대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생활비와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 중이다. 친척 몰래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투라. 그녀는 “비록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지만 졸업하면 조국 이라크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원제 ‘Thura's Diary’(2004년).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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