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식욕과 비만

  • 입력 2004년 6월 15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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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성욕을 통제하는 걸 더 어려워하는 반면 여자는 식욕억제를 더 힘들어한다.” 미국 웨슬리안대 심리학 교수 칼 샤이베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에 대한 남녀차이를 이렇게 말했다. 둘 다 생존과 종족보존에 필수적이지만 중요성에선 남녀가 좀 다르다. 권력을 지향하는 남자는 성 역시 권력행사의 일종으로 파악한다. 반면 수렵채집시대부터 먹을 것을 사냥해주는 남자한테 간택돼야 했던 여자에겐 매력적 외모가 중요했다. 몸매에 대한 여자들의 강박관념은 여기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비만에 대해 남녀의 반응이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강북삼성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의 조사를 보면, 비만 남성의 절반이 “난 뚱뚱하지 않다”고 했지만 여성은 실제 뚱뚱한 사람(16.5%)보다 많은 이(22.1%)가 자신이 살쪘다고 답했다. 외모가 여성 생존의 필수조건처럼 간주되는 사회적 압박 탓에 모델같은 몸매를 선망해서다. 뚱뚱하면 암 당뇨 고혈압 등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지만 여성은 되레 살 빼려다 죽거나 건강을 해치는 수가 많을 것 같다. 식욕도 못 참는 자신의 의지력 부족과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비판하면서.

▷비만을 식욕억제라는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미국의 진보지방(脂肪)승인국가협회(NAAFA)란 단체는 “몸무게를 조절하는 건 다이어트가 아닌 유전자”라며 죄 없는 개인을 못살게 굴지 말라고 외친다. 패스트푸드와 거대 식품회사의 탐욕스러운 상술을 비판하는 소리도 높다. 자꾸 먹고 싶고 기분도 좋게 해주는 설탕과 지방을 잔뜩 넣기 때문이다. 음식조절과 운동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빈곤계층에 비만인구가 늘고 이들에 대한 차별이 심해지면서 비만은 정치적 문제로 확산되는 조짐도 보인다.

▷울산대 의대 이기업 교수가 ‘알파리포산’이라는 체내 식욕억제 물질을 세계최초로 발견했다. 식욕을 이기지 못해 몸무게와의 전쟁에서 백전백패하고, 이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거나 사회불만을 터뜨리던 여성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체중조절이 건강과 미모와 발전을 위한 선택이라면 나쁠 것도 없다. 이르면 2년 후 획기적인 비만치료제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니 이것으로 비만 고민과 논쟁이 종식됐으면 좋겠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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