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송상용/자유에서 책임으로

  • 입력 2004년 5월 28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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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서 책임으로.’ 이것은 보름 전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원회(COMEST) 모임에서 펜스타드 의장이 던진 화두다. 17세기 갈릴레이 재판에서 문제된 과학 연구의 자유는 1930년대에 스탈린과 히틀러의 폭거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오늘날 교회는 힘을 잃었고 정치권력은 과학을 탄압하기는커녕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이제 ‘순수과학의 자율성’, ‘과학의 윤리적 중립성’이라는 신화는 원자폭탄과 더불어 무참히 깨졌다.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영국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과학의 오용을 경고하고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집단행동을 했거니와 전후 핵무기 개발 경쟁과 대형 환경재난을 겪으면서 과학기술윤리는 중심 문제로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생명과학의 시대를 연 제임스 잡슨이 70년대에 인간유전체계획을 준비하면서 과학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의미(ELSI)를 연구할 필요를 역설했다. 과학연구비의 일부를 이 연구에 할애하는 ELSI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3년이 된다. 이제 과학이 사회와 동떨어진 지적 작업이라거나 과학과 윤리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얘기는 할 수 없게 됐다.

황우석 교수 등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과학 자체로선 획기적인 성과였다. 그러나 그 연구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나치의 생체실험에 대한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해 뉘른베르크강령과 헬싱키선언을 만든 유럽과 미국의 생명윤리는 ‘카우보이 복제자들’을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고 논문이 실린 사이언스지 편집인에게 유감을 표하는 서한을 보낸 데 이어 12개 항목의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황 교수는 모든 의혹에 성실히 답변하고 허술한 점이 있었다면 겸손한 자세로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는 19세기부터 뿌리 깊은 과학주의 전통이 있다. 건국 이후 정권은 바뀌어도 성장지상주의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20년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생명공학육성법을 만든 정부는 세계화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 생명공학 개발이라고 믿고 있다. 규제는 안중에 없고 윤리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과학기술부가 스스로 만든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힘들여 합의한 생명윤리법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그 좋은 보기다. 이 문제가 악화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다행히 원만히 수습된다면 세계의 축복 속에 ‘좋은’ 과학이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리 정부도 참석한 1999년 부다페스트 세계과학회의는 ‘과학과 과학지식의 이용에 관한 선언’과 ‘과학의제:행동강령’을 채택했다. 그 후속작업이 각국으로 번져 나갔는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와 함께 ‘과학연구윤리’ ‘과학기술과 인권’을 펴냈다. 2년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과학기술부에 ‘과학기술인 헌장’ 제정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998년 ‘인간 유전체와 인권에 관한 선언’을 발표한 유네스코는 ‘생명윤리 보편 규범에 관한 선언’을 준비하고 있으며 2007년을 목표로 ‘과학자 행위 강령’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 정부가 ‘과학기술자 헌장’을 서둘러 제정한다면 과학기술자를 선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과학 선진국에 윤리 후진국’이라는 오명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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