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서희, 협상을 말하다’…서희가 파병협상 나선다면

  • 입력 2004년 5월 28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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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희, 협상을 말하다/김기홍 지음/280쪽 1만1900원 새로운 제안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이끄는 80만 군대가 고려에 침입했다. 고려 대신(大臣) 서희가 소손녕과 담판을 가진 결과 고려는 오히려 압록강 인근의 강동 6주를 돌려받았다.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걸까.

▽예비협상

소손녕:그대는 뜰에서 내게 절하라.

서희:두 나라의 대신이 대면하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화를 내며 숙소로 돌아가다)

―예비협상은 외교 절차를 둘러싼 신경전이었다. 서희는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take it or leave it)’ 전략을 구사했고 주장을 관철해 기선을 제압함으로써 본협상에서의 협상력을 제고했다.

▽본 협상

소:고구려의 옛 땅은 우리나라에 속하는데 당신들이 침범했다.

서:우리나라는 고구려의 후계자이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평양을 국도(國都)의 하나로 정했다.

―상대가 어떠한 이유를 대면 그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논리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가 칼을 들이대면 칼을, 총을 들이밀면 총을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 좋다.

소:당신 나라는 우리나라와 가까운데도 바다를 건너 송나라를 섬겼다.

서:압록강 안팎도 원래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이 그 중간을 점거하고 있어 왕래하기 곤란하다. 여진을 몰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돌려주어 길을 통하게 하면 국교를 맺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희는 먼저 결론 부분에서 요구할 사항을 위해 ‘압록강 안팎이 원래 우리 땅’이라는 복선을 깔아둔다. 과감히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가 미리 정세를 잘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란은 실제 물리력을 행사하기보다는 80만이라는 숫자를 과시하는 데 치중했고, 서희는 이에 따라 협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을 미리 하고 있었다.

▽후속협상

소:위로연을 베풀겠으니 참석하시오.

서:우리 임금이나 신하 모두 황급히 무기를 잡고 전쟁터에 나와 있다. 어찌 잔치하고 즐기겠는가.

소:친목하는 예식이 없을 수 있소?

서:알겠소.

―서희는 여기서 우회적으로 강화협정을 성실히 지킬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막판에 융통성을 발휘해 상대방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했다.

한국협상학회 이사인 저자(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책 후반부에서 서희의 눈으로 본 이라크 파병 협상, 농산물 시장 개방 협상,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협상 등의 바람직한 전략을 설명한다. ‘정보와 선례를 최대한 준비하라’ ‘상대방 주장의 이면을 읽어라’ ‘원칙과 융통성을 적절히 조화하라’ 등의 방법을 따른다면 세계를 주도하는 제2, 제3의 서희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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