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부부의 날

  • 입력 2004년 5월 17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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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점에 가까운 배우자를 찾고, 밑지지 않는 결혼을 원하는 것이 작금의 세태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한 결혼식에서 신랑의 아버지가 가족대표로 나와 인사말씀에 곁들여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 당부가 잊혀지지 않는다. “결혼은 100점짜리와 100점짜리가 만나 사는 것이 아니다. 30점짜리와 40점짜리가 만나 100점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상대를 내 입맛대로 고치려는 야무진 생각일랑 아예 버려라.”

▷올해 고희(古稀)를 맞은 어느 전직 고교 교사는 젊은 시절 고서(古書) 수집과 잔병치레로 무던히도 부인의 애를 태웠다. 최근 그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부인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얼마 전 아내에게 “당신 무릎 베고 눈 감을 테니 오래 살아야 하오” 했더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하더라는 얘기였다. 노부부의 금실이 참으로 부럽다. 은사는 제자에게 자랑했다. “지난날 좋은 때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이 더 좋아.”

▷‘아침형 인간’인 50대 전문직 남편과 ‘심야형 인간’인 전업주부 아내는 결혼 후 10년 동안 사사건건 충돌했다. 외식 메뉴를 다투다 서로 다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처가에서 한 달여를 지낸 적도 있다. 매사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임을 알아차린 것은 결혼 10년여가 지나서였다. 남편은 결혼 20주년이 된 최근에야 비로소 ‘옥탑 방에 살던 가난한 집의 홀어머니 모시는 장남’과 결혼해 두 아이를 탈 없이 길러준 아내가 조강지처(糟糠之妻)임을 깨닫고 있다고 한다. 남자는 원래 늦게 철이 드는 법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로 무촌(無寸), 부모와 자식은 일촌(一寸), 형제는 이촌(二寸)이라고 한다. 하지만 돌아서면 남이 되고, 헤어지면 원수보다 더한 사이가 되는 것이 또한 부부다. 전생에 원수가 다음 생(生)에 부부로 만나고, 연인은 부모 자식 사이로 만난다고도 한다. 올해 최초로 부부의 날이 제정된 것은 위기의 부부가 늘어난다는 방증일 것이다. 가정의 달에 둘(2)이 하나(1) 된다는 의미로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사랑으로 가정을 일궜으나 어느덧 ‘소 닭 보듯 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부부들이 서로의 소중함을 새삼 인식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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