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중서…’ 유교 국교화, 중화주의 싹 틔웠다

  • 입력 2004년 4월 16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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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베이징이 확정된 뒤 환호하는 중국인들. 거대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을 바라보며 주변 국가들이 중화주의의 부활을 염려하는 가운데 중화주의의 초석을 놓은 인물인 한나라 때 유학자 동중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urisesang@donga.com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베이징이 확정된 뒤 환호하는 중국인들. 거대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급속히 팽창하는 중국을 바라보며 주변 국가들이 중화주의의 부활을 염려하는 가운데 중화주의의 초석을 놓은 인물인 한나라 때 유학자 동중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urisesang@donga.com
◇동중서:중화주의의 개막/신정근 지음/352쪽 1만5000원 태학사

동양학 연구자들에게 ‘중국’은 블랙홀이다. 그런데 이 블랙홀이 더욱 가공한 것은 우리가 그 중력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반성적 의식조차 방출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이 땅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오리엔탈리즘에 유폐되어 있는 서구 추종주의자들보다 어떤 면에서 더 자기기만적이다. 이런 허위의식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동양학의 영역에서 중국을 철저하게 타자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이 속한 ‘중국철학, 해석과 비판’ 총서는 주목받을 만하다. 이 총서의 기획자들은 중국철학에 대해 충분히 낯설어진 오늘의 상황이 역설적으로 중국철학을 진정 반성적으로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을 ‘차이나’로 부를 것을 제안하는 저자의 권고도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책은 중국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코드 중 하나인 ‘중화주의’의 초석을 놓은 동중서(董仲舒·기원전 198∼106)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본격 조명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몇 가지 미덕을 더 갖추고 있다. 가장 큰 미덕은 결코 간단치 않은 동중서의 사유세계를 저자가 충분히 씹어서 소화하기 쉽게 전달해 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고금과 동서를 넘나드는 저자의 자유분방한 사유는 ‘철학함’의 즐거움까지 덤으로 준다.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 이 땅의 지식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기꺼이 그 속에 예속되기를 원했던 중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본성과, 거기에 투영된 문제의식의 내면풍경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논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를 유보하고 싶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동중서가 결코 ‘유교 국교화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근거로 저자는 그가 한대(漢代)에 유교를 제외한 여타의 학술을 법적으로 강제 퇴출시킨 사례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술의 독점이 반드시 법적 규정이나 정치적 명령으로 명문화돼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유교의 기본 텍스트인 오경(五經)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박사관(博士官)’ 제도를 신설하고, 이들에게 진리에 대한 독점적 해석권을 부여함으로써 유교에 대한 연구를 ‘바이블의 학문’(經學·경학)으로 격상시킨 것이 유교를 실질적으로 국교화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요 임금이 말씀하시기를(堯曰·요왈)’이라고 하는 상투적인 자구 하나를 풀이하는 데 10여만자나 되는 주석이 따라붙고, ‘춘추’에 대한 해석이 헌법적 권위를 행사하던 시대적 분위기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모든 것이 물론 동중서 시대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교 중심적 국정운영을 건의했던 무제(武帝) 때부터 그런 흐름의 물꼬가 트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의 ‘기원’인 동중서를 유교 국교화의 친부(親父)로 추정하는 것은 사상사적으로 정당한 판단이 아닐까?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동양철학 hundun@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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