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落選과 落花

  • 입력 2004년 4월 16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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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구경이 끝나가는 것처럼 총선도 끝났다. 좋은 꽃도 자꾸 보면 물리고 ‘꽃 멀미’가 나듯 다들 제가 제일 낫다고 외치는 것을 듣는 것에도 신물이 났다. 나무가 사시사철 꽃만 달고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지루할 것인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뒤,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 나무의 일생이다. 계절이 바뀌면 새 꽃이 나오고, 새 꽃이 시들어 가는 것 또한 자연의 이치다. 사람의 일생도 그러하다.

▷정치인이 정계에 진출하고 퇴장하는 모습도 꽃이 피고 지는 모습과 흡사하다. 정치입문을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에 비유한다면, 활짝 핀 꽃은 밝고 의욕적으로 의정활동에 임하는 모습, 꽃이 지는 것은 낙선과 퇴장을 상징한다. 피어 있을 때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질 때의 모습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자연의 섭리를 거절하면 추함을 더할 뿐이다.

▷벚꽃은 순식간에 화려하게 피어 일순간 진다. 목련은 화사하고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지는 모습은 추하다. 철쭉은 화사하지만 쉽게 떨어지지 않고 서서히 사그라져 간다. 무궁화는 은근과 끈기의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벌레가 꾄다. 매화는 일평생 추운 겨울에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고(梅一生寒不賣香), 상사화는 잎이 말라 죽은 뒤 꽃대가 나와 일평생 꽃과 잎이 만날 수 없다(花葉不相逢). 들국화는 서리 속에서도 고독한 절개를 지키고, 토종 민들레는 서양 민들레의 꽃가루는 거들떠보지도 않아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노래를 낳았다.

▷이번 총선에서 거물급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 일찍 피었다가 일찍 진 철새 정치인은 벚꽃을, 10선 도전에 실패한 노(老) 정객은 목련을 닮았다. 원칙에 충실했으나 국민과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한 소신의 정치인은 들국화를, 소신과 미모를 겸비해 차세대 주자로 꼽혔으나 당도 자신도 구하지 못한 여성 정치인은 매화를 연상케 한다. DJ의 후광을 기대했으나 호남에서 줄줄이 낙마한 민주당 중진들은 상사화를, 40여년 만에 원내 진입에 성공한 진보세력은 토종 민들레와 닮았다고나 할까? 꽃들로부터는 항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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