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고속철 완벽하게 준비했다면서…

  • 입력 2004년 4월 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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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가 개통된 지 7일로 꼭 일주일이 지났다. 많은 사람들이 고속철 여행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 딱히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속철을 타 보기 위해 일부러 볼일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꿈의 열차’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바퀴를 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고장으로 멈춰 서는 경우가 잦고 여기저기서 운영 미숙이 나타나고 있다.

오죽 안타깝고 답답했으면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가 6일 국무회의에서 관계 부처를 질책까지 했겠는가. 고 대행은 “고속철에 대한 지적을 할 때마다 관계 부처에서 ‘별 문제 없다’고 답변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하고 대처한 게 아니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물론 관계 부처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고속철 사고가 많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사고가 아니라 장애”라며 “운행 초기임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과도한 것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그렇다면 고속철이 운행에 들어가기 전 관계 부처에서 ‘완벽히 준비했다’고 자신할 때의 ‘완벽’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궁금하다. ‘사고’와 ‘장애’가 어떻게 다른지도 의문이다.

잦은 고장뿐만 아니라 일부 좌석의 역방향 배치와 일반 열차의 지나친 축소 운행에 따른 불만 등 준비 부족으로 인한 잡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준비 부족 때문에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총선을 의식해 개통을 서둘러 앞당겼다는 오해를 사는 게 아니겠는가. 이왕 말이 나왔으니 어떻게 해서 고속철 개통 일자가 4월 1일로 잡혔는지 관계 당국의 해명을 중심으로 한번 알아보자.

당초 고속철 계획이 수립됐을 땐 개통 일자를 1998년 8월 15일로 잡았다. 그러나 개통이 늦어지면서 1998년에 서울∼대전 구간은 2003년 12월, 서울∼부산 전 구간은 2004년 4월(날짜 미정)로 수정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다소 여유 있게 시운전 일정을 잡았다. 서울∼대전 구간은 2003년 12월 29일까지, 서울∼부산 전 구간은 2004년 4월 29일까지 시운전한 뒤 개통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철도청은 주요 건설 공정이 93%에 이른 지난해 3월 대전과 부산의 개통 시기를 2004년 4월 1일로 일원화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건교부에 건의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철도청과 건교부 내부 방침으로 개통 시기가 4월 1일로 확정됐고 한 달 뒤 공식 발표됐다.

하지만 왜 하필 4월 1일이었는지가 궁금하다. 14일 후 총선이 있다는 걸 정말 의식하지 않은 것일까. 아무리 조금이라도 일찍 개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더라도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가 총선용이라는 오해를 사는 일은 피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이왕 개통이 됐고 또 많은 국민이 기대를 갖고 있는 터에 지금 와서 새삼 개통 일자를 갖고 시비를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12년에 걸쳐 건설된 고속철이 개통과 동시에 ‘장애’를 맞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혹시 마무리 점검을 1개월 앞당겼기 때문은 아닐까.

이진녕 사회2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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