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복순/火葬문화 못따르는 장묘정책

  • 입력 2004년 3월 22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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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걱정하는 것이지만, 장묘시설의 문제가 새삼 현실로 다가왔다. 윤달(음력 윤2월·3월 21일∼4월 18일)을 맞아 수도권 지역 묘지의 개장(改葬) 수요가 급증하는 데 반해 화장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하는 날짜에 화장을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충남 각 시군에서도 분묘 개장 신고가 예년에 비해 5배가량 늘었다고 한다.

▼윤2월 改葬늘어도 ‘모실 곳’ 없어 ▼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비슷한 형편이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윤달은 ‘손 없는 달’이라 하여 평소에 꺼리던 궂은일을 하더라도 탈이 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윤달에 수의를 장만해두면 장수한다는 현대적 상술까지 가세해 백화점이나 홈쇼핑 회사는 고가의 수의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개장이라고 하면 으레 이장(移葬)이나 합장(合葬)하는 것을 말했는데, 요즘 들어 조상 묘 돌보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면서 납골시설에 안치하거나 산골(散骨)하기 위한 개장이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독신자 가구가 늘고 출산율이 떨어져 한 자녀 또는 무자녀 가정도 많은 현실에서 과거처럼 묘지 돌보는 일은 앞으로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

그러다보니 가족 또는 문중 납골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여러 조상묘를 개장해 하나의 납골묘에 함께 모시면 당장 성묘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가족(문중) 납골묘는 또 다른 의미의 묘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개인묘지가 허용되지 않고 묘지가 집단화, 공원화되어 있다. 집단묘지 내 납골 묘역에 설치되는 납골묘도 매장묘보다 훨씬 작은 묘지공간을 이용하고 있으며 평장(平葬)하여 작은 비석 하나 세우거나 꽃을 심어 아담한 꽃밭처럼 꾸며놓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문중이나 집안에서 납골묘를 조성할 때 석물을 과다하게 사용해 호화롭게 꾸미고 있어 새로운 형태의 호화분묘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런 호화시설이 제대로 관리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호화 납골묘 조성을 방치할 경우 봉분만 있는 매장묘보다 더 큰 자연훼손이 예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는 2001년도부터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화장(火葬) 위주의 장묘정책을 추진하고는 있으나, ‘화장 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세우지 못한 상황이다.

이렇게 ‘화장 이후’에 관한 정책이 부실하다보니 호화 납골묘가 들어서는 한편으로 서민들은 제대로 된 납골시설을 구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나 정부가 나서서 화장을 적극 권장하지 않더라도 국민은 이미 화장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받아들일 만큼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화장시설의 확충 및 선진화에 더욱 힘을 쏟아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더 늦기 전에 ‘화장 이후’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종합적 미래지향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납골묘를 포함한 납골시설들의 건립형태나 사용 및 관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와 연구, 그리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납골묘 등 ‘화장 이후’ 대책 시급 ▼

최근 일본에서 민간단체들이 권장하고 있는 자연장이나 수목장, 그리고 독일에서 실행되고 있는 숲을 이용한 나무무덤 등 죽음을 최대한 빠르게 자연으로 되돌리는 환경친화적 장법들이 새롭게 각광 받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까지도 묘지를 통해 문중이나 가족 또는 개인의 명예와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정서도 되짚어야 할 대목이다. 장묘의 문제는 결단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할 복지의 일부분이다.

박복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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