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남근/信不者대책 좀 더 보완해야

  • 입력 2004년 3월 18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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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경제부가 최근 신용불량자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한 금융기관(배드 뱅크)을 만든다는 방침을 제외하면 작년 8·25대책의 반복에 불과하다.

여전히 신용불량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보다 개별금융기관의 연체관리 부담을 덜어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여러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왜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는지 고민한 흔적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배드 뱅크라는 또 다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발표해 채무자들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정부는 숫자 줄이기에 급급하지 말고 적극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시급히 가동되어야 할 과중채무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용불량자들이 적극적으로 채무조정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자신의 연체 규모, 소득 상태 등을 고려해 신용회복 프로그램, 개인파산, 개인회생절차 중 어느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를 종합적으로 상담해줄 창구다.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절차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20가지가 넘는 재판신청 서류의 작성 등 법률서비스까지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 채무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채권자들의 개인워크아웃협약 운영기관이 아니라 미국의 소비자신용상담기구(CCCS)처럼 채무자들을 위한 상담, 교육 및 법률서비스 지원기관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금융감독원처럼 독립적인 채무자 상담과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법인으로 만들어야 하며 관련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신용불량자제도 보완도 시급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개인의 신용을 우량과 불량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불량자에게 금융거래 자체를 봉쇄하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이런 정보를 서로 공유해 방대한 금융정보를 만들고, 개인의 취업 등에 관한 정보로까지 활용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방식이다. 금융기관별로 개인의 신용 정도를 여러 등급으로 구분하고 그 신용등급에 따라 금융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2년 이내에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고, 과거에도 정부의 이러한 공언이 있었던 만큼 각 금융기관이 이를 따를지도 미지수다.

당장 신용불량자제도의 전면적 폐지가 어렵다면 ‘신용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신용불량의 등재기준을 금융감독원이 공적으로 정하고, 신용정보분쟁조정위원회를 두어 신용불량제도에 관한 공적 관리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채무자의 채무조정이 너무 쉽게 되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 금융질서의 혼란이 야기될 수 있어 이 점도 경계해야겠지만, 개인신용 위기의 해결 없이는 경기회복이나 경제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 아래 신용불량자들에게 새 출발의 기회를 폭넓게 허용하는 선진국형 신용위기 대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회사는 파산하면 사회에서 사라지지만 개인은 파산해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계속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남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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