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564년 미켈란젤로 사망

  • 입력 2004년 2월 17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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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칼들이 나를 찌르고 있다….”

미켈란젤로. 그는 채석장에서 갓 옮겨온 대리석 덩어리에서 절규(絶叫)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돌에 갇힌 형상(形象)이 몸부림치는 소리였다. “형상을 대리석의 ‘감옥’으로부터 해방하라!”

미켈란젤로. 그는 20대에 이미 거장이었다. 그 앞에서는 ‘고대 그리스 조각도 빛을 잃었다’. 그는 예술에서 기적을 행했다. 가히 하느님과 맞설 만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그 예술가의 자존심은 완벽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르네상스 미술은 언제나 부(富)가 있는 곳에 함께 있었으며, 부는 또한 권력과 짝을 이루었다. 그의 기나긴 예술 생애는 그 울타리에서 한 치도 비켜선 적이 없었다.

그는 유럽 최대 금융재벌인 메디치가(家)의 후원을 받았고 그의 작품들은 거개가 교황의 ‘주문 생산’이었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자들을 그가 작품에 자주 등장시킨 것은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 권력을 향한 돌팔매질이기도 했다.

‘다비드’상(像)은 비천한 채석공을 모델로 깎았다.

‘천지창조’에서는 교회가 요구한 12사도 대신 구약의 선지자와 무녀를 그렸다. 이들이 펼쳐든 예언서를 백지(白紙)로 남겨 ‘성서의 말씀을 잊은’ 교회를 조롱했다. ‘최후의 심판’은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무리에 이례적으로 흑인노예를 끼워넣었다.

권력자들은 몹시 불편했다. 한결같이 벌거벗은 성인(聖人)들, 날개 없는 못생긴 천사, 수염도 없는 애송이 예수…. 그것은 교회의 권위에 맞선 르네상스 고전정신의 기백(氣魄)이었다.

작품이 공개되자 “이단(異端)이다!”라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림을 바로잡으라는 교황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교황 성하께 먼저 세상을 바로잡으라 전하게. 그러면 그까짓 그림이야 저절로 잡힐 터이니.”

그러나 작품은 물감이 채 마르기도 전에 ‘개칠’을 당해야 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우울증에 빠진 동성애자였다는 미켈란젤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피붙이는 바로 조각들이야….”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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