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兩甲'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08분


코멘트
두 사람은 힘을 합쳤다. 목표는 오직 ‘선생님’의 성공이었다. 형님은 앞에서 끌고 동생은 뒤에서 밀었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3전4기(三顚四起). 마침내 ‘선생님’은 대통령이 됐고 이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권세가 찾아왔다. 사람과 돈이 몰려들었다. 온갖 유혹이 주변을 맴돌았다. ‘언제나 하나’였던 두 사람의 틈은 점점 벌어졌다. 권력 앞에는 부모 자식도 없다고 했던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한화갑 의원. 양갑(兩甲)으로 불리는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실상부한 핵심 측근이었다. 권 전 고문은 늘 죽으면 묘지명에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고 써 달라고 했다. 한 의원은 정치스타일이 DJ를 닮았다고 해서 ‘리틀 DJ’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호남정치의 간판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권력의 추가 기울면서 당당하던 그들의 힘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29일)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이 찾아왔다. 현대그룹에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권 전 고문은 1심 공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한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와 대표 경선 당시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권 전 고문은 “이건 아니다. 하늘이 알 것”이라고 분해 했고, 한 의원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이렇게 종말을 고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다. 경선의 패자만 수사한다는 한 의원측의 억울함도 흘려들을 얘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DJ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동교동의 초심’을 지키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처럼 구차한 신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인들 했을까. 권세를 잡은 사람은 영화와 부귀가 오래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세상의 이치고 역사의 교훈이다. 권력의 달콤함은 잠시고 고통은 길다는 말도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세도무상(勢道無常)을 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