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한화갑 의원. 양갑(兩甲)으로 불리는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실상부한 핵심 측근이었다. 권 전 고문은 늘 죽으면 묘지명에 ‘김대중 선생 비서실장’이라고 써 달라고 했다. 한 의원은 정치스타일이 DJ를 닮았다고 해서 ‘리틀 DJ’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호남정치의 간판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권력의 추가 기울면서 당당하던 그들의 힘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29일)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이 찾아왔다. 현대그룹에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권 전 고문은 1심 공판에서 법정 최고형인 징역 5년에 추징금 200억원을 선고받았다. 한 의원은 민주당 대선후보와 대표 경선 당시 10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권 전 고문은 “이건 아니다. 하늘이 알 것”이라고 분해 했고, 한 의원은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이렇게 종말을 고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다. 경선의 패자만 수사한다는 한 의원측의 억울함도 흘려들을 얘기만은 아니다. 그러나 “DJ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동교동의 초심’을 지키면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두 사람은 자신들이 이처럼 구차한 신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인들 했을까. 권세를 잡은 사람은 영화와 부귀가 오래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세상의 이치고 역사의 교훈이다. 권력의 달콤함은 잠시고 고통은 길다는 말도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세도무상(勢道無常)을 절감하고 있을지 모른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