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몸의 세계, 세계의 몸'…'나'를 찾는 철학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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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세계, 세계의 몸/조광제 지음/453쪽 2만원 이학사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프랑스에서 헤겔주의, 현상학, 실존주의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활동한 철학자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그 독창성과 급진성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뚜렷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니체로부터 하이데거를 거쳐 들뢰즈에 이르는 현대철학의 탈(脫)형이상학적 흐름을 이성, 정신, 반성 능력에 대한 탈신비화의 역사로 본다면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그 흐름의 중간에 서서 중요한 매듭점을 이루고 있다.

메를로퐁티는 우리 삶의 원초적 경험이 어떻게 이성의 능력 또는 개념 사용의 능력이 다가갈 수 없는 몸의 활동을 매개로 이뤄지는가를 데카르트, 칸트, 후설, 하이데거 등 고전철학자와의 대화를 통해 정치한 산문으로 보여줬다. 말하자면 그는 몸, 지각, 감정의 우선성에 기초한 ‘탈관념론적’ 철학으로의 전환을 엄정한 철학적 정신을 통해 확인시켜 준 것이다.

이 전환의 광경을 보고 단순히 고개를 돌리거나 반대로 단순히 환호를 보내려고 하지 않는 ‘절도 있는’ 사람이라면 메를로퐁티의 주저인 ‘지각의 현상학’은 한번 지나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해설서인 이 책 ‘몸의 세계, 세계의 몸’이 탄생하게 된 것도 저자(철학아카데미 대표)가 이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메를로퐁티는 의식-관념으로부터 몸-지각으로 돌아서야 했으며, 왜 저자는 그에게서 이뤄진 의식철학으로부터 몸철학으로의 전환에 주목하는 것일까?

성급하게 대답하자면 의식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몸으로서의 ‘나’를 통해 나 아닌 것과의 관계, 즉 세계 및 타인과의 관계가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意識)은 나 아닌 것을 나와 동일화된 것으로 추상화한다. 이때 내가 나 아닌 것과 맺는 생생한 관계 또는 관계맺음의 사건 자체, 즉 ‘존재’는 무시되고 만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내가 무엇을 관념적으로 파악하여 나의 관리, 지배하에 두기 전에 그 무엇과의 관계맺음이란 사건 자체에 ‘존재’가 기입되며, ‘존재’가 나의 몸, 즉 몸을 통한 지각에 휘감겨 들어온다.

저자는 말미에 메를로퐁티가 ‘지각의 현상학’을 마감하면서 인용한 생텍쥐페리의 한 문장을 다시 강조해 인용하고 있다.

“인간은 단지 관계들의 매듭일 뿐이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관계들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 너머에서 어떤 관념적 초월성 가운데 세계와 타인을 단번에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투명한 사유의 지평을 가질 수 없다. “나는 모든 다른 나들의 교차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교차점’, 즉 관계 가운데 모호한 존재가, 불투명한 역사가, 그리고 불완전한 우리의 실존이 들어올 것이다. 관계는 물론 제약을 가지고 오지만, 그 제약은 나 아닌 세계, 타인과의 만남과 접촉의 조건이며 또한 자유의 조건이기도 하다.

박준상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서양철학 quid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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