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몇 다리 건너?

  • 입력 2004년 1월 9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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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통한다’고 한다.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갈 일이 있을 경우 무엇 때문에 부르는가를 알아보기 이전에 누구 아는 사람이 없는가를 수소문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신병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내무반장의 고향 이웃마을에 살았거나 그의 애인과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특별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지연과 혈연, 학맥과 인맥에 대한 이해는 한국 사회를 통찰하는 핵심 키워드다.

▷한 대학연구소가 여론조사전문기관에 의뢰해 한국인의 ‘사회 연결망’을 조사한 결과 ‘3.6’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도 서너 다리만 거치면 다 알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터이다. 전국에 형님 동생으로 통하는 사이가 2만명에 이른다는 명사(名士)와 고아나 다름없는 무명씨(無名氏)의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같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아무튼 좋은 동네로 이사 가고, 명문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사실은 고급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장기적 투자와 다름없다.

▷신문사에 근무하다 보면 종종 ‘민원’이라고 불리는 기사 게재 부탁을 받는다. 문화부의 출판 미술 음악 담당기자에게 특히 민원이 많이 몰린다. 그러다 보면 ‘한국사회에서 책 한 권 내는 사람 치고 한 다리 걸러 신문사에 아는 사람 없는 저자(著者) 없고,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아내나 자녀를 둔 가장(家長) 치고 신문사와 연줄 닿지 않는 사람 없다’는 현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물론 민원처리 결과는 대부분 “섭섭하다”는 쪽이다.

▷서양에는 ‘여섯 다리만 건너면 전 지구인과 모두 아는 사이(Six Degrees of Separation)’라는 말이 있다. 300명가량의 친구가 있고 상대방도 그 정도 교제 범위를 갖고 있다면 누구나 한 다리만 건너면 9만명의 지인을 갖게 된다. 4단계 건너 아는 사람은 9만명의 제곱인 81억명에 이르게 되니 산술적으로는 60억 지구 인구와 모두 아는 사이가 된다는 계산이다. 그야말로 “What a small world(세상 참 좁구나)”다. 이를 뒤집어 보자. 내가 특정인을 봐주면 내가 아는 사람과 친한 또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는 셈이 아닌가.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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