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화의 윤리'…미국은 최강국 역할 다하고 있나

  • 입력 2004년 1월 9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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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7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스티나 인근의 미군 캠프를 방문해 병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피터 싱어 교수는 코소보 분쟁시 미군 보호를 위해 대규모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면서도 공중폭격으로 일관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7월 코소보의 수도 프리스티나 인근의 미군 캠프를 방문해 병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피터 싱어 교수는 코소보 분쟁시 미군 보호를 위해 대규모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면서도 공중폭격으로 일관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세계화의 윤리/피터 싱어 지음 김희정 옮김/315쪽 1만2000원 아카넷

피터 싱어 교수(미국 프린스턴대·생명윤리학)는 현존하는 철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영향력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없지만 가장 논쟁적이라는 평가는 확실히 맞다. 독일의 저명한 사상가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칼 포퍼, 미셸 푸코, 니클라스 루만, 한스 게오르그 가다머 등 굴지의 학자들과 실증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둘러싼 다소 현학적 논쟁을 벌였다면, 실천윤리학의 거두인 싱어 교수는 동물해방, 낙태, 안락사, 배아복제 등 구체적 사회현안을 두고 논쟁했다. 논쟁대상은 이 시대의 지배적 통념이었다.

싱어 교수는 ‘혁명적 발상으로 세상을 바꾸는 프런티어’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그가 29세(1975년)에 쓴 책 ‘동물해방’은 동물들이 마치 공산품처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며 고통 받는 처참한 사육환경을 섬세하게 고발한 책. 그는 이 책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9개 국어로 번역되고 학술서로는 드물게 40만권이나 팔린 이 책은 오늘날 동물해방운동의 바이블로 불린다.

이번 책에서 그가 청산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국가주의, 핵심표적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싱어 교수는 묻는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국가간의 불평등 완화와 환경보전이라는 지상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방안은 무엇인가? 르완다와 동티모르에서 집단살해와 고문 같은 범죄가 일어났을 때 국제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런 현안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은 과연 자기 역할을 다했는가?

싱어 교수의 대답은 아주 부정적이다. 미국은 최대의 환경파괴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 극복을 위해 전 세계 178개국이 서명한 ‘교토 의정서’를 거부했다. 동유럽 지역의 코소보 분쟁에서는 클린턴 행정부 이래 공중폭격 위주로 대응했다. 미국의 직업군인 한 명이 다른 민족 수백만명의 민간인보다 소중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태에서 미국과 부시 대통령이 보이는 입장에 대한 비판은 내년에 출판될 싱어 교수의 차기 저작 ‘선과 악의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편리한 윤리학’에서 절정을 이룰 것 같다.

싱어 교수의 해법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박탈을 포함한 유엔의 과감한 구조개혁, WTO의 민주적 변혁이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 주장은 국가이기주의를 거부하고 공자와 예수, 칸트에서 확인됐던 황금률에 기초한 새로운 윤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야말로 세계화 시대에 요구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현실을 중시하는 정치학자들의 눈에 싱어 교수는 소박한 이상주의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테러와 전쟁의 위협, 환경재난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그는 미국인, 한국인, 이라크인 모두가 한 번쯤 곱씹어야 할 메시지를 던진다. 멀지 않은 미래에 후손들이 환경재난으로 고통 받게 하지 않으려면, 또 당장 보복테러로 고층빌딩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했듯이 ‘나는 세계의 시민이다’를 선언할 시점이다.

김명식 진주교대 교수 · 윤리학 kimms@c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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