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나이 먹기

  • 입력 2004년 1월 2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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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어렸을 적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떡국을 몇 그릇씩 해치우곤 했지만 20대부터는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졌다. 특히 20대의 마지막 날 밤엔 “이대로 청춘이 가고야 마는구나” 하는 허탈감과 아쉬움에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제대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이립(而立)을 맞았고, 세상일에 수시로 마음을 빼앗기며 불혹(不惑)을 보냈으며, 하늘의 명령은커녕 세상인심도 모르는 채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렀으니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갑신년 새해 지인이 보내준 자그만 책자를 읽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한 100년쯤 살아 봐야 인생이 어떻노라 말할 수 있겠지요…’라는 테마로 1세부터 100세까지 나이에 얽힌 얘기를 짧은 문장으로 재치 있게 정리한 책이다. 1세는 ‘누구나 비슷하게 생긴 나이’, 12세는 ‘돈의 위력을 알 만한 나이’, 19세는 ‘어떤 영화도 볼 수 있는 나이’다. 24세는 ‘후배에게 사회정의를 넘기는 나이’, 29세는 ‘아무리 변장을 해도 진짜 물 좋은 곳에는 못 가는 나이’, 38세는 ‘책과 매우 멀어지는 나이’, 48세는 ‘통계학적으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나이’라고 한다.

▷50세는 ‘다큐멘터리 채널을 즐겨 보는 나이’, 56세는 ‘아파트가 싫어지는 나이’, 59세는 ‘성골과 진골이 아니면 뭐든지 힘들다고 생각하는 나이’다. 62세는 ‘30, 40대 여자는 무서워 보이는 나이’, 66세는 ‘학원간 손녀를 기다리는 나이’, 73세는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다. 86세는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는 나이’, 99세는 ‘가끔 하나님과도 싸울 수 있는 나이’, 100세는 ‘인생의 과제를 다 하고 그냥 노는 나이’다.

▷생물학적인 나이와 정신적인 나이는 물론 같지 않다. 나잇값도 못하는 어른이 있지만 나이에 비해 속이 깊은 애늙은이도 있다. 순진무구한 노인이 계시는가 하면 노회하기 이를 데 없는 젊은이도 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어느 나이든 모두 그에 걸맞은 역할과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올해 내 나이가 인생에서 무슨 의미를 갖게 될지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다. 어느 경우든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텐데….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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