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문홍/‘한미동맹 50주년’ 유감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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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03년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한 구석 평온한 날이 없었던 한 해였다. ‘동맹 50주년’을 보낸 한미관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꺾어지는 해’였지만, 분위기는 시쳇말로 썰렁했다.

동맹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여럿 있었다. 그러나 한미 두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혈맹(血盟)의 의미를 되새기고 축하하는 마음의 교류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반미(反美)감정 표출은 당연한 일처럼 일상화됐고, 미국 사회의 혐한(嫌韓)감정도 덩달아 커진 듯이 보인다. 정부 차원의 한미관계 역시 겉으로만 안 그런 척하고 있을 뿐 한결 냉랭해진 느낌이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21세기의 한미동맹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2002년 12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두 나라 국방장관은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 관한 약정서’에 서명했다. 통일 이후의 한미동맹 개념을 재정립하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구조, 지휘관계 변화 등에 대한 장기 비전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동맹 50주년을 맞는 시기에 ‘향후 50년’의 청사진을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2003년 4월부터 12월까지 5차례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에서 ‘미래의 한미동맹’은 논의되지 못했다.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등 실무 사안을 놓고 지금도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래도 한국 탓이 크다.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 작업은 이미 89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사안이 아닌 만큼 한국은 이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어야 했다. 미국은 이 문제를 2002년 하반기에 공식 제기하려고 했으나 한국 대선에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올해로 늦췄다는 얘기도 있다. 미국은 올 초 이후로도 “한국의 입장은 뭐냐”고 수차 문의했지만 한국측은 이렇다 할 답변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군 재배치, 나아가 한미동맹의 장래에 대한 나름의 전략과 청사진이 없었기 때문 아닌가.

미국은 제 갈 길을 분명하게 정해 놓고 한국과의 협상에 임하고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과거 대북(對北) 억지력에 주안점을 뒀던 주한미군은 동북아 지역을 포괄하는 기동군 지역군으로 변신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기지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한미동맹 50주년을 무익한 논쟁과 실현성이 의심스러운 구호로 흘려 보냈다. 정부 안에서도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뉘어 갈등을 빚은 것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내세운 ‘자주국방론’이 그런 예다.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을 마련하는 일은 우리의 국가전략과 직결되는 중대한 일이다. 한미동맹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는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최대한 우리 국익에 부합되도록 동맹의 새 틀을 모색해야 한다. 그동안 허송세월을 한 만큼 이제 시간도 별로 없다. “이런 식이라면 한미동맹은 1, 2년 이내에 해체 프로세스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일부 한미관계 전문가들의 우려를 허투루 들을 일이 아니다. 2004년에는 이런 걱정을 덜 수 있어야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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