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맛 집, 멋 집’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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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노래 마술 등 개인기가 있는 젊은이들이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는 맛있고 분위기 좋은 음식점을 아는 젊은이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연말을 맞아 회식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맛 집’과 ‘멋 집’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이어진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음식점 가운데 맛 집과 멋 집을 골라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위기가 좋으면 맛이 좀 떨어지고, 맛이 있다 싶으면 분위기가 별로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분위기 보다는 맛을 중요시하고, 여성들은 맛 못지않게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맛 집과 멋 집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맛 집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해 온 터줏대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분위기는 깔끔하지만 집은 대개 허름하다. 단골이 아니면 예약이 어렵고, 자신이 있는 한두 가지 음식을 내 놓는 곳이 보통이다. 백화점식 식단을 내놓는 음식점 치고 신통한 음식점을 보지 못했다. 주인이 직접 조리나 운영을 하고 있고, 값도 결코 비싸지 않다. 주인이 자기가 만든 음식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돈 좀 벌었다고 해서 새 집으로 이사하거나 주방을 들여다 볼 수 있게 고치면 이상하게도 손님이 떨어진다.

▷멋 집은 고급 호텔이나 백화점, 부유층 밀집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고급 인테리어로 실내를 장식하고 그릇 접시 등 집기도 명품을 쓴다. 예약은 기본이고 메뉴도 다양하다. 고급 재료를 사용하며 일류 주방장과 잘 훈련된 종업원을 두고 있다. 대신 손님 입장에서는 값이 만만치 않다. 옷차림 같은 것도 신경이 써진다. 계절마다 실내 장식을 바꿔야 하고 새로운 메뉴를 내놓지 못할 경우 금세 손님이 떨어진다.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서 먹는 맛없는 음식만큼 돈 아까운 생각이 나는 것도 없다.

▷필자는 멋 집보다 맛 집을 선호한다. 어떻게 그렇게 맛 집을 많이 알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 덕분”이라고 답한다. 생각해 보라. 인류가 먹어도 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을 구분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어느 식도락가의 말처럼 속이 시뻘겋고 검은색 씨가 군데군데 박혀있는 수박을 처음 먹은 인류는 참으로 용감한 조상이었다. 독버섯과 식용버섯을 구분하는 데에도 수많은 선인(先人)들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내년 1월 19일 하루 5명의 손님만 제한해서 받는다는 맛 집에 초대를 받았다. 매일매일 그날이 기다려진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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