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 탓’ 알아야 정책 바로 선다

  • 입력 2003년 12월 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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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이 한 강연에서 “병이 미미할 때 치료하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다. 그동안 훌륭한 의사가 아니었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위기를 사전에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동안 책임회피에 급급한 정부 당국자들의 모습만 주로 봐 온 때문인지 금융감독 책임자의 당연한 반성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우리 국민 13명 가운데 1명은 신용불량자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전업 신용카드사들의 누적적자가 4조원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소비 위축이 심화되고 금융시장이 위기상황에 빠졌는데도 정부 안의 누구도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카드정책을 맡았던 고위 당국자들도 하나같이 ‘다른 부처 탓’ ‘카드사 탓’ 하기에 바쁘다.

금융문제가 터지면 대다수 국민이 그 영향권에 들어가기 십상이다. 또 일부 금융사의 부실이 전체 경제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에 대해 강력한 사전 규제와 엄격한 감독 권한을 정부와 금융 당국에 부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금융사의 부실에도 정부와 금융 당국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더구나 전체 시스템이 위협받을 정도의 상황이 빚어졌다면 가장 큰 책임을 정부와 금융 당국이 질 수밖에 없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따지는 이유는 ‘속죄양’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책임을 덮으면 원인에 대한 진단이 어긋나고, 진단이 틀리면 제대로 된 정책 처방을 하기 어렵다. 결국 ‘냉탕 온탕식 정책’이 판을 치고 국민만 골탕을 먹는다.

비단 카드정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도 ‘지난 정권이 잘못해서’ ‘다른 부처가 발목을 잡아서’ ‘대외환경이 나빠서’ 등 책임회피성 주장만 무성하다. 좋은 정책은 선진국 사례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정책 실패에 대한 겸허한 반성 속에 해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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