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장모와 사위 사이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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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姑婦)관계는 좋지 않은 것이 보통이었다. 사실상 한 남성을 상대로 한 두 여성의 경쟁관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장모와 사위의 관계는 보편적으로 좋은 관계였다. ‘사위 사랑은 장모’ ‘사위는 백년손님’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 절을 한다’는 말들은 모두 장모의 지극한 사위 사랑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장모와 사위의 갈등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유명 법률상담소에서는 아예 상담항목에 ‘장모-사위 갈등’을 별항으로 마련해 놓고 있을 정도라니까.

▷장모와 사위의 사이가 나빠진 것은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발언권이 높아지면서 시가(媤家) 대신 처가(妻家)가 가족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바야흐로 ‘시집살이’는 사라지고 있는 대신 ‘처가살이’가 늘어나고 있으며 고모와 삼촌의 자리 또한 이모와 외삼촌이 대치(代置)한 지 오래다. 여성들로서는 남편이 자기에게 섭섭하게 하는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자기 엄마한테 함부로 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고 한다. 명절 때마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서둘러 처갓집으로 가곤 했던 한국의 남성은 이제 장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필자가 1990년대 중반 미국 대학의 국제 언론인 연수프로그램에 참석해 장기 체류할 때였다. 미국의 유명 신문사에 근무하다 온 고참 여성 언론인의 외모와 자상한 태도가 장모님과 흡사해 “당신을 볼 때마다 우리 장모님 생각이 난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동료로부터 “미국에서 장모와 사위는 개와 고양이 사이나 다름없다”는 귀띔을 받고서야 실수를 깨달았으나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얼마 후 동서양 문화 차이에 대한 세미나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사위-장모 사이를 설명해 주면서 장모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자 그제야 그의 얼굴이 펴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사이인 장모와 사위도 있다. 결혼 후 3년 동안 장모에게 매일 문안전화를 건 어느 사위는 부부싸움 뒤 집을 뛰쳐나와 한 달여 동안 처갓집에서 지낸 적도 있다. 이제 장모는 도움이 필요하거나 곤란한 일이 생길 때면 딸보다 먼저 사위를 찾는다. 사위는 아내가 자신에게 불만이 많지만 친정어머니한테 잘해드리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가 시가에 신경을 써주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처가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그는 확신한다. 사위는 오늘도 처가의 올 김장을 걱정한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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