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제발 때리지 마세요"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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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함함하다고 했다. 품안의 자식이든 장성한 자식이든 마찬가지다. 그 잘생긴 얼굴에 손톱만한 상처라도 나면 어머니는 속이 상한다. “왜 좀 조심하지 그랬냐!” 말로는 꾸중을 하면서도 행여 흉터가 남지 않을까 약을 발라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며 부산해진다. 그런데 아무 잘못 없이 쇠파이프로 얼굴을 얻어맞아 수십 바늘 꿰맸다면? 이빨까지 부러져 밥도 못 먹고 굶고 있다면? 아이고 어떻게 키운 내 자식인데, 억장이 무너진 어머니는 당장 죽 단지를 들고 아들을 찾아 나설 판이다.

▷경찰병원의 한 의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자식 가진 부모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있다.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 대책위원회’ 홈페이지에 올린 ‘제발 전·의경들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은 목이 메어 아침을 뜨던 밥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네티즌 반응은 부안주민이 더 많이 당했다는 의견부터 ‘정말 싸워야 할 대상은 정치하는 ×들인데 괜한 농민과 전·의경만 다치고 있다’는 지적까지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글을 쓴 의사가 적시했듯 전·의경들의 대부분은 시위대의 아들 손자 조카뻘 되는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시위대가 쇠파이프로 후려친 것은 군대간 우리 아들들의 얼굴이자 이 나라 법과 질서의 얼굴이었다.

▷핵폐기장을 반대하는 부안주민들의 주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위를 하다보면 분노와 적개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격해지기 십상이다. 군중심리의 가장 현저한 특성이 파괴욕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방패로 가로막고 있는 스무살 안팎의 전·의경들이 너무나 완고한, 그리하여 부숴버려야 할 공권력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양쪽 모두 쇠파이프를 내려놓고, 방패를 내리고 만났다면 도무지 폭력을 쓸 이유가 없는 사이였음에도.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누가 먼저, 더 많이 폭력을 휘둘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저마다 자신이 심하게 당했다고 믿는 법이다. 폭력이 증오와 복수심으로 이어지고 공격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유전자의 자연선택이기도 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끝없이 이어질 ‘복수의 법칙’을 막기 위해 인간이 고안한 제도가 법과 원칙이다. 폭력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오늘도 시위를 벌이고, 또 막을 예정이라면 일단 쇠파이프와 방패를 내려놓자. 그리고 마주선 상대의 얼굴을 보며 생각해보자. 우리가 과연 피 흘리고 맞서야할 적인가를. 제발 때리지 마세요.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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